나는 고기를 정말 좋아했다. 서울에 있다가 본가에 내려가면 하루 세끼를 다 고기로 채우고 올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집에서는 채소를 볶아 먹고 쌀에 각종 곡물을 더해 밥을 지어 먹는다. 한때 요거트 덕후로 불렸던 내가 이제는 요거트 대신 비거트를 주문한다. 또, 난 밥 없이는 살아도 빵 없이는 못 사는 빵순이라, 매달 비건 빵을 한가득 주문하기도 한다. 친구들을 만날 때도 비건 식당이나 비건 옵션이 가능한 식당으로 가려 하는 편이다. 아직 완전 비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제는 비거니즘이 나에게서 더 멀어질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으로 비건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무지를 호기심이라 포장하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는 정말 비거니즘에 관한 지식이 ‘無’에 가까웠던 게 사실이다. 비거니즘에 대해 알아보면서 인간의 기술에 상반되는 놀라움을 느꼈다. 인간은 전에 없던 획기적인 기술로 식물성 대체 육류는 물론, 인공 계란, 식물성 참치, 새우, 연어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사실을 들으면 놀라지 않을까. 나도 처음엔 못 믿었다. 반면, 그만큼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착취하고 있기도 하다. 축산업에 동원되는 동물들은 강제 출산, 신체 훼손, 밀실 사육 등으로 고통받는다. 또한, 인간에게 충분한 살점을 내어 주기 위해 성장 촉진제를 맞은 후 평균 자연수명보다 훨씬 짧은 기간만 사육당하다가 결국 도살당한다. 인간은 엄청난 기술의 발달을 이루어 냈지만, 이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도록 돕고 있다. 우리들 또한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기형적인 현상을 묵인하고 있다. 알고 나니 외면할 수 없어졌다. 나에게도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게 내가 채식을 지향하게 된 이유다.

 실컷 채식을 지향한다고 써놓고 이런 말을 하기 부끄럽지만 난 아직도 고기라 불리는 동물 사체에 입맛을 다시곤 한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다가도 고깃집으로 가득한 신촌 거리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익숙한 냄새가 나는 쪽으로 시선이 돌아간다. 그럴 때마다 눈 딱 감고 가던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동물성 식품 소비를 최대한 줄이는 건 아직 동물권 따위는 중요치 않은 현실에 대한 나만의 작은 저항이다. 채식을 지향하는 것은 입맛의 변화가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더 어렵지만 그만큼 더 지켜나가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채식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기반찬이 있어야 든든한 한 끼라고 인식되는 한국에서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을 찾기는 힘들다. 그리고 막상 채식하려고 하면 우리가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에도 동물성 식품이 함유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다 제외하면 채식주의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개 남지 않는다. 그나마 휴학생이었던 지난 학기에는 채식을 실천하기가 수월했다. 일정을 맞춰야 하는 부분이 식당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다가오는 학기에 복학한다. 이제 다시 학교에 다니면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교내에는 채식이 가능한 곳이 거의 없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조금씩 놓게 된다면 슬플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지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는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