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흔히 “너 아직 사람 되려면 멀었다”고 말한다.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 표현은 분명히 잘못됐다. 아동 또한 온전한 인간임을 간과하고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동을 미성숙의 보호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지적하고 존엄성을 지닌 주체로 인정해야 함을 주장하는 협약이 있다. 바로 ‘유엔 아동권리 협약’.

 올해는 UN 총회에서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을 채택한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1989년 만장일치로 통과한 이 협약은 아동의 생존, 발달, 보호, 참여에 관한 기본 권리를 명시한다. 우리나라는 1991년, 북한은 1990년에 이 협약을 비준했다.  

 최근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이 활동은 ‘유엔 아동 권리 협약’ 채택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탈북 아동들과 함께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을 북한에 사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꿨다. 2박 3일 동안 아이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생활하며 54개의 조항 중 제 45조까지 번역했다.

 오랜 분단의 역사로 인해 같은 한글을 씀에도 북한과 남한의 언어체계는 다른 점이 많았다. 이 때문에 번역 과정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단어에서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아 협약에 등장하는 ‘이득’이라는 단어를 ‘리득’으로, ‘양심’은 ‘량심’으로 바꾸었다. ‘노력’을 ‘로력’으로 바꿀지 여부를 두고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토론을 하기도 했다. ‘텔레비전’은 ‘텔레비죤’으로 바꾸는 모습을 보며 북한어가 보다 외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반영하는구나 생각했다.

 번역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북한 아이들에게 생소한 개념을 풀어 설명하는 것이었다. 종교라는 개념 그 자체의 존재를 의심한 적이 있는가. 비교적 최근 북한에서 온 아이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종교라는 게 무엇인지조차 몰랐다고 했다. 북한에 이 협약을 넣을 때 종교에 관한 부분은 생략하면 안 되느냐 질문도 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단어의 뜻을 풀기 위해 나는 그 아이에게 연이어 질문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종교를 아이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음... 신을 믿는 마음이요.”, “그럼 신이라는 것은 존재한다고 믿는 거야?”, “하나님이라고 하늘에 사는 사람 정도는 아는데 그것도 미신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랜 대화 끝에 우리가 정의한 종교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 부처님과 같이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를 ‘신’이라 하는데, 각자 원하는 존재를 마음대로 믿을 수 있는 마음. ‘종교’라는 단어 외에도 우리는 제 34조에 등장하는 성폭력, 성매매, 성착취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번역했다. 아이들에게 이것들이 생소한 개념이냐 물어보자 폭력, 매매, 착취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성’이라는 개념이 남한과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마지막 시간에는 여러 조항에서 중복해 등장하는 단어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소감을 나누며 한 아이는 “이제서야 알았다는 게 아쉽다”며 “아직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이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다른 아이는 “분명히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마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명시돼 있는데 왜 그러지 못하냐” 고 반문하기도 했다.

 인권은 자신의 권리를 인지함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우리는 북한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인지할 수 있도록 단어 하나하나 확인하고 바꿨다. 한여름 더운 날, 우리들이 했던 고민이, 북쪽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소중한 사람임을,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임을 알게 해줄 작은 촛불이 되기를 꿈꾸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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