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구호 현장에서 20년, 첫 한국인 여성 WHO 국장 되기까지
국제 구호 현장에서 20년, 첫 한국인 여성 WHO 국장 되기까지
  • 김수현 기자
  • 승인 2019.0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화·포스코관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강민휘 국장 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이화·포스코관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강민휘 국장. 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동티모르 정부를 재건하고, 아프가니스탄 산모와 영유아의 생존을 위해 모자보건사업을 추진하는 등 긴급구호사업 현장에서 두 발로 뛴 국제 구호 전문가가 있다. 재작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실 고문이 된 강민휘(불문·91년졸)씨다. 한국인 여성으로서는 첫 번째 WHO 국장급 인사 발령이다. “달나라에 사람도 쏘아 올리는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을 어떻게 방관할 수 있겠냐”며 약 20년간 유엔 개발 협력사업과 국제 구호 현장에서 활약해 온 강씨를 5일 ECC B215호에서 만났다.

강씨는 1998년 JPO(Junior Professional Officer·국제기구초급전문가) 프로그램을 통해 유엔의 일원이 돼 국제노동기구(ILO)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국제기구 활동을 본격화했다. 이후 그는 당시 전 WHO 사무총장이었던 고(故) 이종욱 박사의 조언에 따라 유엔 미션(UN Mission)에 지원해 동티모르 재난 현장을 찾았다. 모두가 “동티모르 국민도 내전을 피해 제 나라를 떠나는데 네가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냐”며 “위험한 곳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렸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가 현장에서 처음 맡은 임무는 독립전쟁 이후 붕괴된 동티모르의 정부조직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당시 동티모르는 내전을 거치며 국민 60% 이상이 난민이 돼 유엔이 제공한 천막에서 거주하고, 인력과 수도·전기시설이 소실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강씨는 그 당시 동티모르 수도 딜리의 첫인상을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서울에 비유했다. 그는 유엔 동티모르 임시정부 요원으로 노동사회복지부 재건사업을 감독하고, UNDP(UN Development Programme·유엔개발계획) 동티모르 사무소에서 1년 반 동안 기초생활 보장사업을 이끌었다.

“현장에서는 심장 박동이 느껴져요. 발로 뛰면 사업의 수혜자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본부 책상 앞에 앉아서만은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죠. 보고서와 통계자료를 통해 정책을 세우는 본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정책이 제대로 시행됐는지, 그리고 실질적으로 유효한지 알기 어렵죠.”

강민휘 씨는 감비아에서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관리하는 모자보건사업을 실시했다. 사진은 예방접종센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제공=본인
강민휘 씨는 감비아에서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관리하는 모자보건사업을 실시했다. 사진은 예방접종센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제공=본인

강씨는 이후 유니세프에서 일하며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 인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관리하는 모자보건사업을 실시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고랭지역은 기본적인 위생이 지켜지지 않고, 이틀 동안 당나귀를 타고 달려야 의료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 산모와 아이에게는 치명적인 환경이었다. 직접 주민들과 생활하며 방안을 고민하던 그는 위생교육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깨달았다.

그는 한국정부로부터 지원 받아 식수 공급 및 위생 사업을 전개하고, 그 지역 산모와 아이를 대상으로 손 씻기와 위생교육을 실시했다. 이후 예방 접종을 비롯한 모자보건사업을 지속한 결과 산모 사망률이 줄고 태아 생존율이 올랐다. 여자가 임신하면 장례식을 준비했던 지난날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강씨는 “외부인과 접촉이 드문 마을 사람들이 제게 연신 감사해하는 것을 보며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섰다”며 “우리가 하는 일은 인간 생존의 차원에서 중요하며 나눔의 문화임을 다시금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약 20년간 구호 활동을 끝없이 진행해온 경험에 비춰 미래에는 고통받는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낙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지난 50년 동안 이뤄낸 구호 성과가 인류 역사 500년 동안의 성과에 비해 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의료를 지원한다면 비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 의료 수준이 발전하면서 구호 사업도 점차 초고속 성과를 내고 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일할 때 산모 사망률이 거의 반으로 줄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힘을 보태주고 있느냐에 달렸어요.”

하지만 최근 세계적으로 국수주의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경제 시장이 악화됨에 따라 ◆공여국가의 지원금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유엔의 걸림돌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유엔의 지원이 어쩔 수 없이 닿지 못하는 곳도 있다. 경제 제재를 받는 북한이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의 폐결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이 지원 사업을 실시했으나 경제 제재로 지원금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여국가였던 그리스가 재정난을 겪으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유엔의 도움을 받게 됐어요. 남미에서는 잘 사는 나라였던 베네수엘라가 경제적으로 몰락해 현재 유엔의 지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죠. 지금 잘살고 있어도 미래에 어떤 이유로 위기를 맞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유엔은 항상 필요한 존재예요. 지원금이 줄어들고, 지원 사업에 정치적 조건부를 내 거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끼죠.”

그는 그럼에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이 세상에 못 할 건 없다”며 공여국가로서의 한국의 국력을 강화하고 싶다는 소망을 비쳤다.

“한국은 ◆수혜국가에서 공여국가로 성장한 바람직한 사례예요. 국제 협력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있죠. 여태껏 잘해온 것처럼 공여국가로서 입지를 다졌으면 좋겠어요. 한국의 절대적인 공여 액수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크지 않지만,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지원을 할 수 있잖아요. 이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후진 양성에 힘쓰고 싶어요.”

 

 

◆공여국가: 타국에 이득이 되도록 돈이나 물건을 제공하는 국가

◆수혜국가: 타국으로부터 인적·물적 지원을 받는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