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스크린 위에 영사된 선생님의 커다란 손을 아십니까?』 이화내 대형강의실에서 투영기(OHP)와 스크린, 그리고 마이크로 진행되는 강의를 받아본 이화인이라면 위의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교수님은 대형강의실에서 학생들의 술렁거림이 무엇때문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준비해 온 강의노트만 읽어나가기 바쁘다.

학생들 입맛은 다양한데 교과목 선택의 폭이 좁아 오직 전공시간과 겹치지 않고 학점 잘 나오는 과목만 편식할 수 밖에 없는 실정. 게다가 선생님 얼굴은 커녕 마이크소리도 잘 들리지 않으니 대형강의실의 풍경은 각양각색이다.

국회의 속기사처럼 빽빽이 받아적기만 하는 선배, 옆사람과 잡담하거나 소설에 빠져있는 친구, 세상모르고 「쿨쿨」잠만 자는 후배…. 간혹 2시간 속강이라도 듣게되면 비좁은 책걸상 덕(?)에 허리 두드리며 강의실을 나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또 하나, 시험까지도 ○·× 50문제이기에 「벼락치기 공부」가 적중한 효과를 톡톡히 나타낸다.

결코 가볍게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대형강의실 문제가 보다 심각하게 나타난 것은 80년대 초반, 졸업정원제가 실시되면서 부터이다.

갑자기 학생수가 배로 증가한 것에 비해 교수진 확보와 시설은 제자리 걸음이었으니 대단위 학급이 운영될 수밖에. 대학문을 들어서기 전 우리가 꿈꾸었던 대학강의는 몇명의 학생과 교수님이 옹기종기 앉아 사고력과 창의력을 십분 발휘하여 토의하는 생기있는 수업이었다.

그러나 대형강의가 판을 치는 지금 교수님은 단순한 지식전달의 컴퓨터를 대신하였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학생들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받기식 수업」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교수·학생 모두 진정한 대학의 모습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처지를 학교당국은 모르는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뻔한 살림」의 사립대학이라 학생들도 막무가내로 투정부릴 수는 없다.

그러나 학교측도 아무런 손도 대지 않고 무관심해서는 안될 만큼 대형강의실의 문제는 이화내 학문발전의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 장애물 제거에서 가장 근본적인 교수확보는 조금 뒤로 미룬다고 해도 강의실내 음향장치, 마이크, 대형강의형 교실 마련 등은 매우 시급하다.

만가지 생물이 숙성한다는 계절, 가을이다.

이 계절엔, 누구나 왕성한 식욕과 더불어 여름 내내 지쳤던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더불어 우리 이화의 강의실에도 가을이 찾아와 「순응」과 「무관심」의 고질병을 청산하고 생명력 있는 수업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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