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회는 방학도 예외일 수 없어요"

이민영(국어국문학과 2) 「학회가 서야 학생회가 산다」 90년도 우리 국문과에 유령처럼(?) 퍼져 나갔던 이 모토는 기존 학회체계와 그 내용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학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려는 의지의 한 표현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학회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작업의 착수에서 시작하여 학회의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려는 일련의 노력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교육부라는 집행부서의 하부체계였던 학회는 독자적인 체계로 정립되었고 학회간사의 교육과 학회원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등, 학회는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국문과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이는 학회원으로서 내가 느끼는 커다란 긍지이기도 하다.

1학기동안 우리 국문과 학회는 거의 8~9회 정도의 세미나를 진행시켰고, 학회장이 운영위원회에서 보고받은 전체적인 사업을 학회구성원에게 유기적으로 전달하여 총회 등 학생회사업에 참여하는 학우들은 점점 불어날 수가 있었다.

학회에서 축적된 역량을 보여주는 「불휘제」라는 행사가 기획되었고, 대외 정치사업에 있어서도 국문과의 저력은 5.9동맹휴업 당시 100명이 넘는 학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문과만의 단독집회를 열 수 있을 정도였다.

방학도 우리에게는 예외일 수 없었다.

1학기 학회활동의 오류를 방학때 극복해 2학기 사업과 연결시키기 위해 우리 과에서는 방학중 「특별학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즉, 방학이라는 조건속에서 많은 학우들이 지방에 내려가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는 학회를 제외하고, 서울에 남아있는 사람들 중 철학이나 사회과학에 관심있는 학우들을 모아 방학때 학습을 하는 특별학회가 구성된 것이다.

특별학회는 89학번 사회과학 학회와 90학번 철학학회로 만들어졌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을 우리는 독서무아지경으로 극복하였다.

바로 학회 속에서! 농활 일주일 후부터 진행된 89사회과학학회는 무려 9번의 세미나-4권의 책과 1회분의 정세토론-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었다.

덥고 짜증났던 여름이었지만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자극받기도 했고 한권 한권 밟아나가면서 느끼는 내 의식의 성장은 그때그때의 실천으로 검증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매일매일 세미나 후 문제지를 작성하였고 친구들이 많이 오지 않을 때는 간간히 술도 마시면서 많은 얘기도 나누었고 빈시간을 활용해 집회때 나왔던 유인물을 돌려읽기도 하였다.

친구들이 지칠 때 간사언니께서 내주셨던 숙제-옆친구에게 편지쓰기-는 친구에 대한 동지애를 표현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이렇게 우리 학회는 89학번 9명이 모여 학습과 실천으로 여름을 보람있게 보낼 수 있었다.

또한 학회일정을 모두 마친 후 우리는 학회와 서로에 대한 평가를 통해 2학기 보조간사로 들어갈 것을 결의하였고 2학기 보조간사협의체를 책임지고 운영할 사람을 추천하였다.

이제 우리는 1학년 후배들과 함께 학습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요약하자면, 「모든 길은 학회로 통한다.

한아름의 학회를 꽃피우기 위해 그 해 여름은 그리도 무더웠나보다」로 정리될 수 있겠다.

국문과 학회의 발전은 이제 우리 어깨에 놓여있고 학회를 통해 한걸음씩, 한치씩 커나가는 나를, 그해 여름의 끝이 가르쳐 주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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