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12년째 무료 변론 활동 중인 인권 변호사 장서연씨 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12년째 무료 변론 활동 중인 인권 변호사 장서연씨
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왼팔에 벌새 타투가 새겨졌다. 벌새 밑엔 ‘Don't be mean’(못되게 굴지마)이라는 문구가 따라 적혔다. 창덕궁 돌담길 어느 외진 곳에서 벌새와 함께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한 변호사가 있다. 검사직을 그만둔 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12년째 무료 변론을 하고 있는 장서연(법학·07년졸) 변호사다.

 

“안데스 산맥의 케추아부족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우화가 있어요. 숲에 큰 불이 나자 코끼리, 사자들은 도망치느라 바쁜데, 크리킨디라는 벌새는 작은 부리로 물을 길어 불을 끄려고 했어요. 다들 비웃었지만 크리킨디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중이야.’”

 

성소수자로서, 소수자 집단에 자유와 평등이 주어지길 바랐다. 크리킨디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공감’에서 공개채용 공고가 떴다. 장 변호사는 망설임 없이 1년 동안의 검사 생활을 그만뒀다. 그의 신념은 왼팔에 벌새 타투로 새겨졌다.

 

“공감이 처음 시작한 2004년엔 공익변호사 단체가 거의 없었어요. 주변에서 ‘돈도 안 받으면서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시선도 있었죠.” 아름다운 재단의 사무실 베란다를 개조해 마련한 좁은 공간에 서너 명의 변호사들이 모였다. 국내 최초 비영리 공익인권변호사 단체가 탄생한 순간이다.

 

소수자 인권에 대한 직접적인 일을 하고 싶어 입사한 그였지만,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다양한 집단의 약자들이 생각보다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공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외국인 보호소 문제를 처음 알고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에서 일하다 체류 기간이 초과해 불법체류자가 된 외국인들은 법원 영장 없이 보호소에 무기한 구금이 가능해요. 영장주의에 기반한 적법 절차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들이죠.”

 

공감에 찾아오는 의뢰인은 주로 여성, 성소수자, 난민 등 무법지대와 같은 열악한 영역에서 차별받는 이들이다. 공감은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반영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형법상 낙태죄 헌법불합치 등을 이끌어내며 사회적 약자를 가둔 울타리를 하나둘씩 깨뜨렸다. 그는 공익,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낯설었던 초창기 때에 비해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시민사회 안에서도 예전보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2007년에 차별금지법 사태가 발생했어요.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에서 성적지향 항목을 삭제한 거죠. 이때 법무부에 반대하는 많은 사회단체가 연대체를 이뤘는데, 사람들은 여성단체 안에 성소수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를 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엔 성소수자 인권이 뒷걸음질 친 자국이 남아있다. 재작년 한 육군 대위는 동성과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군형법 제92조6에 따라 혐의가 적용됐다. 2015년 유엔(UN) 자유권위원회는 정부에 해당 조항을 폐지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동성애 혐오에 기반을 둔 조항이죠. 강제성의 여부와 상관없이 추행죄라는 이름으로 처벌된다는 게 문제예요. 불과 몇 년 전에는 추행죄가 아니라, 동성애를 비하하는 계간(鷄姦)이라는 용어로 표현됐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동성과 성관계를 한 육군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날, 대만에서는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 금지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그리고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지난 5월17일, 대만 입법원은 동성혼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만이 위헌 결정 2년 만에 동성혼을 합법화한 데에는 성평등 교육법 제정의 영향이 커요. 성적 지향에 대한 인권 교육을 통해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을 해소한 거죠. 성별 고정관념이 높을수록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높거든요.”

 

최근엔 빈곤과 복지 분야에서 인권 활동도 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꾸준히 정의로운 목소리를 낸 그가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린 이유는 경제적 양극화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서다.

 

“여성, 성소수자, 난민 혐오는 본인 삶에 대한 불안정성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비난을 할 수 있는 희생양이 필요한 셈이죠.”

 

그렇게 그는 ‘홈리스’(Homeless) 상태에 있는 개인을 위한 인권지킴이 활동을 하게 됐다. “홈리스는 노숙인뿐 아니라 주거 취약 계층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에요. 고시원, PC방, 쪽방촌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홈리스 상태죠.”

 

스스로가 여성이고, 성소수자기 때문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보다 더 그를 지지해 준 배후에는 왼팔의 ‘Don't be mean’이 있었다.

 

“「젠더 무법자」를 쓴 트렌스젠더 케이트 본스타인(Kate Bornstein)이 성소수자에게 건넨 말이 있어요. ‘너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라. 단, 한 가지 룰을 지켜라. 자기 자신에게 못되게 굴지 마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더디게 제자리걸음할 때면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희망을 놓지 않는 그다. “러시아 속담에 ‘당신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어요. 여성 운동이 유구한 역사동안 이어져 와서 오늘날의 페미니즘 리부트(reboot)로 되살아난 것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자유와 평등이 주어지는 사회도 올 것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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