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연구로 찾은 약물 흔적, 작은 솜털에도 마약은 남아 있다
끊임없는 연구로 찾은 약물 흔적, 작은 솜털에도 마약은 남아 있다
  • 임유나 기자
  • 승인 2019.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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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용의자 거짓말 밝혀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김은미 법독성학과장을 만나다
로버트 할리, 박유천 등의 마약 투약 여부를 밝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김은미 과장  제공=본인
로버트 할리, 박유천 등의 마약 투약 여부를 밝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김은미 과장
제공=본인

버닝썬 게이트를 시작으로 로버트 할리, 황하나 그리고 박유천까지. 지난 몇 달간 한국 사회는 연예인과 재벌 2세의 마약 투약 혐의가 밝혀져 떠들썩했다. 영원한 비밀일 줄 알았던 이들의 마약 혐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수사에 덜미를 잡혔고 그 중심엔 김은미 법독성학과장(약학과·86년졸)이 있었다. 마약집중단속으로 예년보다 업무량이 2배 늘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서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과장이 국과수에 입사한 건 국립과학수사 ‘연구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본교에서 약학과 석사과정까지 수료하며 약학 연구에 흥미를 느꼈고 심도깊은 연구를 이어가고 싶었다. 이런 그에게는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했다. “대학생 때 국가에 소속된 공무원 사회는 비교적 성평등이 잘 지켜지는 사회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봐요.” 당시 사기업은 여성이 결혼하거나 출산을 하면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아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가 속한 국과수 법독성학과는 마약류를 비롯한 약독물을 감정 및 연구하는 기관으로, 경찰이 마약 용의자를 단속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경찰이 마약 용의자를 수사하며 시료를 채취하면 국과수는 채취한 시료를 분석해 마약 투약 여부를 판별한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됐던 마약사범은 연예인 박유천씨다. 박씨의 투약 여부를 밝히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국과수에서 받는 대표적인 마약 성분 추출 시료는 소변과 모발이다. 소변의 경우 마약을 투약하고 일주일 내에 채취하지 않으면 양성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머리카락이나 체모는 자르지만 않으면 과거 몇 개월 전 흔적까지 검출된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박씨는 염색과 탈색을 반복했고, 겨드랑이털과 음모를 모두 제모했다. 이처럼 머리카락에 화학처리를 하게 되면 마약 검출량이 감소하고 체모는 잘라버리면 과거의 투약 기록이 사라진다. 실제로 당시 박씨의 소변과 모발에서 마약이 검출되지 않았다.

 

극적으로 경찰이 채취한 다리털에서 필로폰 양성반응이 나왔다. 김 과장은 “몸에는 가슴털, 솜털, 눈썹 등 엄청난 털들이 있는데 다 밀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작은 털은 간과하지 않았나 싶었다”고 전했다. 국과수는 박씨의 양성반응 결과를 경찰에 회부했고 다음 날 박씨는 마약 용의자에서 마약 사범이 됐다.

 

제모와 탈색뿐 아니라 신종마약의 증가도 마약 투약 여부를 밝히는데 어려움이 되고 있다. 원래 국내에서 소비되는 마약은 필로폰과 대마초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화학물질을 합성한 신종마약이 확산됐고 실제로 버닝썬 검거 때 다양한 종류의 마약이 검출됐다. 김 과장은 “합성으로 물질 구조를 변형하면 변종이 된다”며 “패션이 변하듯 약물도 고전 마약인 필로폰과 대마초에서 신종마약으로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적인 연구개발은 변화하는 신종 마약분석을 따라잡기 위해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신종마약은 그에 맞는 분석법을 새로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헌과 사례를 통해 신종마약에 대한 정보도 빨리 받아들이고 해외사례도 보며 어떻게 분석했는지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해요.”

 

나아가 김 과장은 마약 사범을 근본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 제도적, 사회적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단속하고 처벌하는데 강하지만 예방은 약한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꼬집었다.

 

“인터넷을 통해 교류가 활발해지고 유학생도 많아지면서 마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됐어요. 마약에 많이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인데 지식이 없죠. 특히 청소년기때 마약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알리는 교육을 실시해야 해요.”

 

재활프로그램의 강화도 주장했다. 초범자나 정상참작이 되는 미성년자는 벌을 주기보다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는게 중독에서 벗어나는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마약이 검출되면 대부분 재판으로 넘겨져 교도소에 보내지는데 외국의 경우 반 정도만 교도소에 보내고 나머지는 재활을 시켜요. 우리도 프로그램을 통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심리적, 의료적 치료를 해 재활 부분을 강화해야 해요.”

 

수많은 연구로 마약 사범을 밝혀온 김 과장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연구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년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 마무리하고 신종마약류 연구개발에 많이 주력할 계획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