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수강신청, 자유로운 수업분위기 … 마르부르크대를 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대학도시 마르부르크(Marburg). 이곳의 ‘마르부르크 필리프스 대학교’는 동화집으로 유명한 그림 형제와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모교이기도 하다. 올해 여름, 본교를 휴학하고 마르부르크대에서 방문학생 신분으로 학기를 보내고 있는 이화인은 약 스무 명. 이들은 짧게나마 독일의 대학 수업을 경험하며 어떤 점을 인상 깊게 느꼈을까. 이곳의 이화인 10명을 만나 수업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유로운 수강신청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의 수업

△스포츠를 중시하는 독일 교육

 

“가장 부러운 점은 학생의 수업권이 최대한 보장된다는 거예요. 특히 수강신청을 약 한 달 동안 여유롭게 하면서, 과목을 신청하거나 취소하며 시간표를 조정할 수 있어 좋았어요. 우리나라처럼 10초 안에 한 학기 수강과목이 모두 결정되는 시스템과는 확연히 다르죠.” 경제학, 경영학 전공 등 세 과목을 수강 중인 박규연(국제사무·16)씨의 말이다.

 

 

독일 헤센주 대학도시 마르부르크
독일 헤센주 대학도시 마르부르크

 

△여유로운 수강신청

대부분 이화인은 마르부르크대에서 수업권 보장이 제일 인상 깊다고 입을 모았다. 원하는 수업을 거의 다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르부르크대의 수강신청 풍경은 우리나라와는 비할 수 없이 여유롭다. 우리나라처럼 한 날 한 시에 모두가 ‘표준시각’을 검색하며 모니터 앞에 대기를 하고 있다가 촌각을 다퉈 전투적으로 수강신청을 하지 않는다. 대신, 개강이 다가오면 이곳 포털인 마빈(MARVIN)에 접속해 자신이 원하는 강의를 탐색한다. 마음에 드는 강의가 있으면 ‘APPLY’ 버튼을 눌러 신청하기만 하면 끝이다. 대부분 강의가 인원 제한이 없어 가능한 시스템이다. 전공별로 수강신청 기간도 다르다.

 

박 씨는 “어떤 과목은 신청자가 교수의 당초 예상보다 두 배 많았는데 강의실을 더 큰 곳으로 옮기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됐고, 튜토리움(강의에서 배운 내용을 여러 분반으로 나눠 소수 정원으로 직접 실습하는 수업)은 분반을 하나 늘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학생 수 당 강의실 수나 수용 인원이 많기도 하고, 박사생들이 튜토리움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 당 강의자의 인원이 많아서 가능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지현(사복·15)씨도 “원하는 수업은 모두 들을 수 있었다”며 “강의를 듣고자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되는지 경쟁률이 뜨지 않고 강의 평점이나 수강 후기 같은걸 모르는 상태로 신청하다 보니 학생들이 정말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소신껏 신청하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인기 있는 강의는 조기 마감되기도 한다. 하지만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개강 후 첫 수업시간에 가서 앉아있으면 대부분의 경우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네 과목을 수강 중인 이정인(한국음악·16)씨는 “인기 강의는 먼저 대기인원을 받은 다음 철회하는 학생이 생기면 순서대로 자리를 주는 등 효율성 있는 수강신청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이화에서 경험한 수강신청보다 융통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예나(컴공·16)씨 역시 “가장 놀랐던 점은 흔히 생각하는 ‘수강신청’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한국에서는 매 학기 전쟁 같은 수강신청을 겪어야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저 첫 수업에 들어간 후 포털에서 강의 신청 버튼만 누르면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마르부르크대 학생 식당인 멘자앞의 란(Lahn)강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학생들
마르부르크대 학생 식당인 멘자앞의 란(Lahn)강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학생들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의 수업

이화인들은 교수-학생 간 쌍방향 소통이 활발하고 수평적인 분위기의 수업방식도 마르부르크대의 부러운 점으로 꼽았다.

 

경영 전략 수업을 듣고 있는 김지현씨는 “이화에서 들었던 경영 수업과 진행방식이 확연히 달랐다”고 했다. 본교 수업에선 여러 회사의 케이스와 경영 방식, 강점과 약점 등을 PPT를 통해 일방적으로 외우게 되는 반면, 이곳에선 다양한 논의에 참여하면서 직접 생각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화의 수업풍경과 비교하면 이곳 학생들은 필기를 덜 하는 대신 교수의 강의 중간에 끼어들어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수업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서 “강의자가 정답을 제시하고 학생들은 외우는 수업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함께 정답을 고민해보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고 덧붙였다.

 

 

 

 

 

박씨 역시 “이론 수업에서조차 강의자가 학생들의 생각을 정말 많이 물어본다”고 전했다. “경제학 수업에서 예제로 ‘교육수준과 수면 시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공식이 나왔어요. 교수가 학생들에게 ‘교육 수준과 수면이 양의 관계일지 음의 관계일지 생각을 말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학생은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어려운 일을 할 테니 수면 시간이 줄어들 거라고 했고, 또 다른 학생은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오히려 생산성이 증가해서 더 잠을 많이 잘 거라고 했어요. 처음엔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아 ‘이미 도출된 연구 결과가 있을 텐데 굳이 왜 묻지?’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런 질문 하나하나가 내용을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한국에서라면 그냥 주어진 숫자로 공식을 풀어 답을 계산했을 거예요.”

 

이씨는 “모든 논제에 대해 교수는 학생의 답변을 수용해주고, 강의 중에도 학생이 질문을 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되돌아보고 수긍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수현(물리·16)씨도 “우리나라에선 학생이 질문을 하려해도 보통 격식을 차려 손을 높이 드는데, 이곳에서는 펜을 살짝만 드는 것으로 의사표시를 한다”며 “꼭 손을 번쩍 드는 정도의 용기를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질문하는 모습이 신선했다”고 전했다.

 

세미나 수업을 인상 깊게 꼽은 학생도 많았다. 마르부르크대의 수업 형태는 크게 포어레중(강의식 수업), 우붕(문제풀이식 수업), 세미나로 나뉜다. 세미나 수업은 최대 20명 정도의 소수 인원이 한 반이 돼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수업을 이끈다. 학생 스스로 준비한 발표나 토론이 수업의 중심이고, 의견 교류도 활발히 이뤄진다.

 

이번 학기 심리학과 전공 세미나를 듣는다는 강서현(뇌인지·17)씨는 “기존에 경험했던 대부분의 강의식 수업과 달리, 세미나는 내가 직접 준비를 해가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신기했다”며 “교수는 학생들이 발표할 주제를 미리 면담을 통해 점검해주고 토론 도중 엉뚱한 주제로 흘러가거나 보충 설명이 필요할 때 개입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인류학 세미나 수업을 듣고 있는 김혜인(기후·17)씨는 “학생 참여도가 제일 중요한 이런 수업을 한국에서 했다면 과연 잘 진행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 친구들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설령 자신의 의견이 틀렸다고 해도 당당하게 본인 주장을 펼치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정혜주(심리·16)씨는 이렇게 자유롭고 수평적인 수업 분위기 속에서 소수자 배려를 경험하기도 했다. 도시에 맹인 학교가 있는 만큼 마르부르크는 시각장애인 친화적인 환경이다. 대학에서도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번 학기 수강하는 심리학 세미나의 팀플에서 시각장애인 학생과 한 팀이 됐는데, 이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서 팀플 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라며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니까 팀플을 면제해 주는 식이 아니라, 장애가 있어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참여를 하고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돕는 방식의 배려라고 느꼈다”고 했다. 또 “모든 학생들을 동등하게 바라보고 소수자를 배려하되, 공평한 참여를 보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얼마 전에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유모차를 끌고 들어와 아이와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도 보았다”며 “아이가 수업 도중 소리도 지르고 강의실을 뛰어다니기도 했지만 수업을 계속 진행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 상황에서 교수와 학생이 모두 개의치 않고 수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성이 어머니가 돼서도 눈치 보지 않고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얻으며 출산 및 육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스포츠를 중시하는 독일 교육

마르부르크대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스포츠 수업이다. 본교 역시 사회체육교육센터 하에 체력단련실과 ECC 휘트니스 그리고 양질의 GX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화인들의 수요가 많지만 마르부르크대의 스포츠 수업은 종류만 140가지에 달한다. 요가, 발레, 축구, 농구 같은 기본적인 운동부터 비치발리볼, 조정, 펜싱, 산악자전거처럼 대학 스포츠에서 흔히 접해보지 못한 종목도 눈에 띈다. 한국어로 구령을 외치는 태권도 수업도 있다.

 

본교 축구동아리 ‘FC콕’에서 활동하던 장씨는 이곳에서도 축구 수업을 수강 중이다. 장씨는 “이화에서 하던 축구도 물론 좋았지만 이곳 운동장은 잔디도 깔려있고 크기도 널찍해 만족스럽다”며 “이곳 대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진입장벽이 낮고 체육의 일상화가 잘 이뤄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종목에 도전한 학생도 있었다. 정현진(소비·16)씨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쌓고 싶어서 스포츠 수업으로 그간 관심이 있었던 펜싱을 선택했다”며 “처음 배우는 펜싱이지만 한 학기 4~5만원의 저렴한 가격과 장비를 대여해준다는 점이 좋고 수준별로 반도 나눠져 있어 어렵지 않게 따라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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