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해질 때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잖아.”

 

얼마 전 친구에게 이 말을 듣고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내 머릿속에는 둘리와 고길동이 함께 산다. 그것도 원작을 고증하듯 매일 같이 우당탕탕 싸워가며. 이들의 달갑잖은 동거는 학보 막학기를 인턴 생활과 병행하며 시작됐다.

 

인턴으로 일하는 회사에서 나는 사고뭉치 둘리의 꼴을 한다. “넵”, “죄송합니다” 연발하며 동분서주한다. 잎새에 이는 작은 실수에도 괴로워한다. 학보실에서 나는 길동 아저씨의 모양새다. 실수 하나에 “다음부터는”, 실수 하나에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후배 기자의 실수 헤는 밤을 보내며 부끄러운 부장 칭호를 슬퍼한다. 출퇴근과 동시에 직급을 넘나들며 하루 동안 몇 차례나 혼란스러워 한다. 자꾸만 사고 치는 둘리의 마음과 답답해하는 길동 아저씨의 마음이 번갈아 고개를 내민다.

 

신입기자 때의 내 모습은 어땠나. 모르는 게 뭐 그리 많았는지, 학보사에서 밥을 일주일에 세 번 주는지도 몰랐다. 미디어 기자를 어떤 목적으로 뽑았는지도 몰랐다. 무지와 막막함을 고루 갖춘 둘리였다. 회상하다 보니 길동 아저씨의 역할을 가끔 맡을 수 있는 현 상황에 만족해야 할 것만 같다.

 

막막함을 연료 삼아 2년을 악착같이 버텼으니 이 정도 만족은 허락해도 괜찮으려나? 취재기자들이 작성한 기사를 온라인에 아카이브할 인력이 필요해 뽑힌 것도 모르고 일을 벌리고 밤을 지샜다. 그 덕에 학기마다 부원이 한 명씩 늘어 넷이 됐다. 여전히 타인이 쓴 기사를 올리느라 주말을 써버리지만 STUDIO이대학보라는 이름을 달고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유월이면 이 일과도 안녕이다. 이제 금요일 밤에 공정실로 향할 일이 없다.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까지 기사들이 순서에 맞게 잘 올라갔는지 확인할 일도 없다. 그외 마흔 가지도 넘는 골칫거리들로부터 해방이다. 게다가 인턴 기간도 끝이다. 길동 아저씨처럼 잔소리할 일도 둘리처럼 사고치고 수습할 일도 없겠다. 머릿속 불유쾌한 동거가 곧 끝난다는 말이다. 그러니 후련해야 하는데, 까다롭게 굴며 스트레스 주었던 기억만 떠올라 글을 붙잡은 마음이 빚진 사람처럼 헛헛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김없이 기자들은 서소문동에서 이번 학기 마지막 마감 중이다. 이런 심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빨리 글을 완성해 일찍 귀가하는 데 일조하는 것뿐이다. 가끔 길동 아저씨처럼 굴었고 모자란 면도 많았지만 부원들 끼니만은 챙겼던 2년 차 둘리를 가끔 떠올려 주길 바란다. 기자 꼬리표와 함께 쓰는 마지막 글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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