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 탄다. 가까운 데 간다고 싫은 소리 들으면 안 되니까 누구보다도 밝게 웃으며 인사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 않는가. 그런데 웬걸 침을 잘도 뱉는다. 아저씨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아이, 손님 잘못 태웠네. 거기 가는 줄 알았으면 안 태웠지.” 나도 아저씨처럼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아이, 택시 잘못 탔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택시 안 탔지.’ 하지만 무사히 집에 도착하려면 그럴 수 없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죄송해요..”

 

자 그 다음부터는 가족관계부터 인생사까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TMI를 모두 들어줘야 한다. 손녀딸이 미국에서 박사가 된 이야기. 대기업을 다니다 퇴직하고 취미 겸 택시를 운전하는 이야기. 어쩜 모든 택시 아저씨들은 미국에서 박사가 된 손녀딸을 한 명씩은 가지고 계신 건지 참 궁금하지만 그 물음은 접어두고 늘 그랬던 듯이 마음에 없는 소리나 내뱉는다. “우와, 아저씨가 정말 기쁘셨겠어요.” “정말요? 대단하세요.”

 

아저씨는 가끔 유쾌하지 않는 질문도 하신다. “남자친구는 있어요?” “왜 없을까.. 남자에 관심이 없어요?” 평소 같으면 대답을 하지 않거나 퉁명스럽게 대답했을 테지만 택시 안에서만은 그럴 수가 없다. 유쾌하지 않은 질문에도 애써 웃으며 답을 해야 했다.

 

집에 다 와갈 때쯤 어떤 아저씨는 나랑 헤어지기 싫다고, 내려주기 싫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농담처럼 웃으며 물으셨다. “반대쪽으로 계속 달려버릴까?” 아저씨에겐 농담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말이 나에게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하하하 웃으며 핸드폰을 가방에서 꺼내 손에 쥐었다.

 

집에 오는 내내 나는 단 한순간도 웃기지 않았고 즐겁지 않았지만 계속 웃어야 했다. 두렵고 불안할수록 나는 더 밝게, ‘예쁘게’ 웃었다. 지금은 늦은 밤중이고, 달리는 차 안에는 아저씨, 나 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저씨가 어떤 사람일지, 아저씨의 기분이 나빠지면 나에게 어떤 일이 날지 확신할 수 없었고 ‘여승객 잠들자 청테이프로 묶어 납치한 택시기사’와 같은 뉴스 헤드라인을 수없이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아빠와 함께 택시를 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아저씨의 인생사도, 싫은 소리도 듣지 않고 유쾌하지 않을 때 억지로 웃지도 않는다. 그리고 피곤할 때는 아무 걱정 없이 잠깐 눈도 붙인다. 아빠는 알까?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고 불쾌할 때는 마음껏 불쾌함을 티 내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를.

 

나도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고 싶다. 불쾌할 때는 마음껏 불쾌함을 티 내고 싶다.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내 성별이 바뀌어 있거나 캡틴마블처럼 테서랙트에서 엄청난 힘을 얻지 않는 한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택시 문을 열며 나는 매일 이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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