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를 받은 것을 기념하는 졸업사진 속에서,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성장해 온 당신은 지워지고 가장 외형이 아름다운 당신만이 인형처럼 남을 것이다.”

지난 17일 아산공학관, 이화·포스코관, 학생문화관 등 캠퍼스 곳곳에 ‘대학 내 기형적인 졸업사진 문화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익명의 게시자가 붙인 대자보에는 졸업사진 촬영 때 여성이 화장을 해야 하고, 몸에 끼는 원피스를 입기를 암묵적으로 요구받는 사회적 여성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겼다. 

대자보 본문에서 게시자는 “평소에 잘 입지 않았던 (몸에) 딱 달라붙는 연분홍빛 원피스를 입고 조금만 신고 있어도 다리가 붓는 누드톤 구두를 신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졸업사진 문화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여성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가장 저열한 가치이자 여성을 통제하기 위한 완벽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어 “졸업사진 문화는 여성에게 외모 코르셋을 씌우고, 여성 신체를 상품화하는 것”이라며 이를 자성적으로 비판하고 바꿔 나갈 것을 촉구했다. 대자보 마지막 장 하단에는 공대 페미니즘 연대체에 참여할 학생을 모집하는 글과 대자보 작성자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는 QR코드가 기재됐다.

해당 대자보를 작성한 공대 4학년 재학생 ㄱ씨는 “꾸밈을 요구받는 기형적인 문화에 대해 학생들이 쉽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졸업사진은 4년 동안 이화에서 성장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며 “외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본인의 자유의지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ㄱ씨는 공대 페미니즘 연대체 운영 계획과 관련해 “남성 중심 문화가 만연한 공학 계열에서 여성 공학인들과 연대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며 “여성 공학인들의 업적을 알리는 카드 뉴스 제작이나 여성의 공대 진학을 멘토링하는 중·고등학교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자보를 읽은 강신재(사회·18)씨는 “졸업사진에 적합한 꾸밈 양식이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된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다”며 “대자보 내용처럼 졸업사진에 인형 같은 모습이 아닌, 4년간 이화에서 성장해 온 진정한 나의 모습을 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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