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사범대생, 역사 교생 선생님 되다
우당탕탕 사범대생, 역사 교생 선생님 되다
  • 배세정 기자
  • 승인 2019.0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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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사범대생이 된 지 벌써 3년이 지나, 4학년이 됐다. 사범대생 4학년이라면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바로 교생(교육실습)이다. 교육실습은 사범대학이나 교직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직접 학교 현장에서 실전 연습을 하는 것이다. 보통은 모교로 많이 가지만, 때에 따라 학교에서 단체로 배정해주기도 한다.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4학년생인 본지 기자가 4주간 겪었던 교생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보고자 한다. 교육실습은 3월25일부터 4월19일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부속 고등학교 이화·금란 고등학교(이대부고)에서 진행했다.

이대부고의 교생 출근 시간은 오전7시30분. 집에서 이대부고까지 약 1시간 30분이 걸리는 터라 신촌기차역 쪽에 한 달 동안만 지낼 하숙방을 구했다. 덕분에 오전6시에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출발하면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하숙방을 안 구했으면 평일 내내 오전5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날 뻔했다.

3월25일은 첫 출근 날이었다.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갔지만 첫날은 생각보다 별것 없었다. 교생실에서 선생님의 말씀만 듣다가 반 학생들과 처음 인사를 나눈 건 7교시가 끝난 후 종례 시간이었다. 내가 맡은 반은 2학년 6반, 복도 끝에 있는 반이었다. 종례 시간에 인사하기 위해 기다리는데, 몇 학생이 먼저 말을 걸었다. “교생선생님이세요?”라며 수줍게 또는 신기하게 묻는 학생들에게 난 “네, 안녕하세요”라고 어색하게 대답했다. 

몇 분이 흐른 뒤, 드디어 처음 교실에 들어갔다.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학생들이 나도 신기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같이 지낼 학생들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교생 첫날의 일이었다. 

2학년 3반에서 첫 수업을 하는 모습. 송 대 발전한 성리학을 설명하고 있다. 제공=본인
2학년 3반에서 첫 수업을 하는 모습. 송 대 발전한 성리학을 설명하고 있다. 제공=본인

우당탕탕 교생 선생님의 이대부고 적응기

학교에 가면 교과담당 선생님과 학급담당 선생님을 배정받는다. 교과담당 선생님은 내가 가르칠 과목 선생님이고, 학급담당 선생님은 내가 맡은 반의 담임 선생님이다. 교생기간 동안 진행할 수업은 교과담당 선생님과 상의하고, 학급운영은 학급담당 선생님과 논의한다. 과목마다, 선생님마다 수업시수, 수업방식 등이 모두 다르다.

수업을 3주 차에 배정받았던 덕분에 1~2주 동안은 천천히 수업 준비를 하면서 반 학생들과 친해지는 데에 시간을 썼다. 간간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교실에 놀러 가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참관하기도 했다. 6반의 담임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었는데, 수업에 참관했다가 지수로그함수 문제도 풀 뻔했다. 

2주 차부터는 조회와 종례를 직접 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나에게 전달 사항을 미리 알려주시면, 나는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2주 차는 조회와 종례를 무사히 마쳤는데, 문제는 3주 차 때 생겼다. 이대부고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수요일 아침에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채플을 듣는다. 4월9일 화요일, 담임 선생님께 다음날에 채플이 있다고 전달받아 조회 시간 학생들에게 ‘내일 채플이 있으니 교실로 등교하지 말고 대강당으로 곧바로 오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교생 동기에게 ‘오늘은 채플이 아니라 3학년 모의고사 보는 날’이라는 말을 들었다. 잠이 확 깼다. 나 때문에 우리 반 학생들만 대강당에 덩그러니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바로 교생 지도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학생들 반 단체 채팅방이 있으니, 반 회장에게 오늘 채플이 아니라고 정정해달라고 말했다.

담임 선생님께 혼날 각오를 하고 학교로 갔다. 겁먹은 것과 달리 담임 선생님은 본인의 잘못도 있다며 나를 혼내진 않았다. 두 번째 관문이 남았다. 학생들에게 사과하는 것. 조회에 들어간 나는 학생들에게 어제 잘못 알려줘서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근데, 학생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왜 날 원망하지 않지’. 의문이 들어 반 회장에게 물어봤더니, 우리 반 학생들은 이미 전날 밤에 단체 채팅방을 통해 예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던 거다. 하긴 다른 반 학생들은 안 간다니 이상했을 거다. 

동나무 스탠드에서 2학년 6반 학생들이 ‘스승의 은혜’를 불러주고 난 뒤 찍은 단체사진. 제공=본인
동나무 스탠드에서 2학년 6반 학생들이 ‘스승의 은혜’를 불러주고 난 뒤 찍은 단체사진. 제공=본인

교생에게 가장 중요한 수업

출근 첫날, 내 교과 담당 선생님을 확인했다. 한국사를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일 거란 예상과 달리 2학년 세계사를 담당하는 선생님이었다. 세계사라니. 그래도 서양사를 학교에서 배우긴 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중국의 역사를 맡겼다. ‘송 대 경제와 사회·문화’. 그것이 내가 맡은 수업의 주제였다. 이대부고에는 역사 전공 교생이 5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각각 1차시 수업만을 배정받았다.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했다. 금성출판사, 천재교육, 미래엔 등의 교과서 중 해당 단원을 다 읽고, 전공서도 읽었다. 인터넷 강의도 같은 단원으로 3개 정도 들었다. 내용을 파악한 후 피피티도 만들고 대본도 만들었다. 원래 교과 담당 선생님은 거의 강의식 수업만 하시는 분이었는데, 교생에게는 학습 활동도 하도록 제시했다. 다른 교생 동기는 빙고 게임이나 인스타그램(Instagram) 피드 만들기 등의 활동을 진행했고, 나는 광고 만들기를 구상했다. 실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동기 교생들에게 수업을 시연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드디어 처음으로 수업하는 날이 됐다. 4월9일 4교시에 2학년 3반 수업이 있었고, 7교시에 2학년 1반 수업이 있었다. 3반 수업에 들어가기 전 긴장해서 속이 불편했다. 무사히 수업을 끝내고 점심을 먹으러 가려는데 너무 긴장한 탓인지 배가 아팠다. 거의 처음으로 급식을 남겼다.

급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두 번째 수업인 7반 수업에 들어갔다. 한참 송 대에 어음보다 발달한 지폐인 교자와 회자가 쓰였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질문했다. “선생님, 그럼 송 대에는 어음이 아예 안 쓰였나요?” 당황했다. 모르는 내용이었다. “음, 선생님이 그 부분은 잘 모르는데 따로 알아보고 알려줄게.” 땀이 났다.

그 후로도 그 학생이 두 개나 더 질문했다. “사(詞)가 정확히 뭐예요?”, “사마광의 자치통감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다룬 거예요?” 다행히 아는 질문이었다. 아까 대답 못 한 게 자꾸 생각났지만, 학습활동까지 끝내고 수업을 마쳤다. 

다음 수업은 4월10일 수요일 내가 맡은 반인 6반 수업이었다. 우리 반 학생들이라 그런지 내 수업을 열심히 들으려는 노력이 눈에 보였다. 수업 중간에 송 대의 사회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장택단의 ‘청명상하도’란 그림에 대한 영상을 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버퍼링이 걸리더니 소리가 끊겨서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당황했고, 내 수업을 열심히 들으려는 우리 반 학생들도 당황했다.

‘당황하지 말고 수업하자’라고 생각을 고치고, 소리를 줄였다. 그리고 직접 영상을 설명했다. “저기 보이는 화폐가 교자와 회자예요. 아까 같이 배웠죠?” 학생들도 웃고 나도 웃었다. 

완벽했던 수업은 없었다. 학생들의 대답이 없어 민망했던 적도 많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업을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학습 활동도 열심히 해줬다. 

마지막 날 학생들이 준 마지막 선물. 케이크와 헤어 미스트, 장미꽃, 롤링페이퍼를 받았다. 제공=본인
마지막 날 학생들이 준 마지막 선물. 케이크와 헤어 미스트, 장미꽃, 롤링페이퍼를 받았다. 제공=본인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교생 마지막 날이 왔다. 평소처럼 오전7시30분까지 등교를 한 나는, 다른 교생선생님과 함께 우리 반 학생들에게 줄 선물을 안고 6반으로 향했다. 6반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아무도 없었다. ‘뭔가를 준비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준비한 선물을 하나씩 학생들 책상에 놓았다. 뒤늦게 칠판에 적힌 동나무 스탠드로 와달라는 글을 발견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학생들이 스탠드에 열 맞춰 앉아있었다. 회장은 케이크를 들고 있었고, 학생들은 ‘스승의 은혜’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반주가 흘러나오는 것 같아 봤더니 맨 끝줄에서 한 학생은 바이올린을, 또다른 학생은 첼로를 켜고 있었다.  

음도 안 맞고 박자도 맞지 않았지만 듣는 내내 웃음이 나왔던 노래가 끝난 후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었다. 마지막 날 퇴근을 하고 나서도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못 해 아쉽다며 장문의 카톡을 보낸 학생, 보고 싶다고 카톡을 하던 학생, 신촌에 있는 곱창집을 추천해달라고 불쑥 전화하던 학생, 학교에 놀러 오라고 전화하던 학생··· 한 달간의 추억을 이렇게 또 곱씹어보니 당시로 돌아간 듯하다. 오늘 밤은 자기 전에 스승의 은혜 불러줬던 우리 반 학생들의 영상을 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