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레슨, ‘쓸 데 없는 짓’이라고요?
보컬레슨, ‘쓸 데 없는 짓’이라고요?
  • 이수빈(커미∙16)
  • 승인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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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레슨을 받게 된 건 정말 충동적인 일이었다. 물론 노래에 관심은 있었지만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한다는 건 내 인생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노래를 소름 끼치게 잘하는 것도 아닌데 돈 쓰고 시간 써서 노래를 배워봐야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훨씬 많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마음으로 무작정 취미반에 등록했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못한다면서요! 잘하는데?” 쭈뼛쭈뼛 부른 노래를 듣자마자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보컬 선생님은 노래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봤을 텐데 고작 나한테 그런 칭찬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결국 칭찬에 대해서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지만 마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한참 말을 고르다가 원래 취미반은 음치인 분들이 많이 오나요, 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보통은 그렇다고 말한 후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진짜 잘하는 거예요.”

그 후로도 레슨을 갈 때마다 선생님의 칭찬은 계속됐다. 박자가 엉망진창이어서 자책하고 있을 때도 “음정은 역시 정확하네!”라고 말해준다거나, 그동안의 레슨 곡들과 다른 스타일의 노래를 듣고는 “몰랐는데 가성이 진짜 예쁘다.”라는 칭찬을 듣는 건 예사. 심지어는 절대음감도 아닌데 음정 잡아서 부르는 내가 ‘개멋있다’는 말까지 했다. 선생님과 내 사이에는 수없이 많고 또 사소한 칭찬들이 있었고 어느 때는 노래를 하러 간다기보다 칭찬을 들으러 간다는 생각에 더 들뜬 날도 있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될수록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연습실에서도 남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하던 나는 어느새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의 노래를 마음껏 부르는 사람이 돼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일상으로도 이어지면서 내가 하고 싶던 일들을 적극적으로 도전해보게 됐다. 내가 못 부르는 음역의 노래는 키를 낮추면 되는 일이고, 조금씩 안 짚이는 음정들은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

생각해보면, 칭찬을 통해 ‘열정맨’이 된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나와 닮아 있었다. 뭐든 해보고, 안 되면 말자고 생각했던 고등학생 나. 그 뒤에는 나의 사소한 성취에도 칭찬을 해주던 여러 선생님이 계셨다. 그러나 이런 기억들은 대학교에 입학한 후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지난 6학기를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건 A, B 따위의 알파벳과 평점이 전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어차피 알파벳 몇 개로 평가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애써 잘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 순간이 늘었다. 그렇게 무뎌진 감각들을 보컬 선생님의 칭찬이 다시 일깨워준 셈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사소한 칭찬의 힘을 믿는다.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작은 칭찬들은 내 안의 칭찬받을 점을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제부터는 내 안의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나를 스스로 칭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칭찬도 충분한 힘을 가져서 뭔가에 새로이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기를. 오늘도 그런 것들을 바라며 연습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