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면서 어쩔 수 없었다. 독일에서 사 온 탐폰이 다 떨어진 지 오래였지만, 게으른 나는 배가 알싸해지는 것을 느낀 어제가 돼서야 해외직구를 알아보며 아마존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원하는 제품을 받으려면 적어도 2주. 아쉽지만 이번 달은 그냥 드럭스토어에서 생리대를 살 수밖에 없었다.

진열대 앞에서 수십 분을 서성였다. 유해물질이 있을 걸 알면서도 미리 사지 않은 게으름을 탓하며, 그나마 그 중에라도 나은 것을 골라보겠다고 몇 가지 종류의 생리대를 한참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가장 싼 거, 아니면 1+1로 묶인 행사상품을 보지도 않고 골랐을 테지만 그래도 오늘은 천연 성분으로 만들었다는, 진열된 것 중에서도 조금 가격이 비싼 놈을 집어 들었다.

문제는 가판대 앞이 아니라 계산대 앞에서 생겼다. 평소 양도 아주 많아 한 번 살 때 갖가지 종류를 사는데, 그날도 서너 종류를 챙겨 계산대로 가져갔다. ‘띡 띡’ 화면에 찍히는 가격. 2만원이 훌쩍 넘는다. 청결하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가격까지 참 ‘못됐다’ 싶으니 이쯤 되면 생리하는 게 억울하단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피할 수나 있으면 피해 보기라도 할 텐데 또 어찌나 날 맞춰서 꼬박꼬박 찾아와주시는지, 진통제까지 사 들고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잔뜩 상해버렸다.

2016년 이맘때쯤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는 소녀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 후로 딱 1년 뒤, 생리대 유해물질 파문이 일었다. 안전한지도 제대로 모른 채 다른 나라보다 개당 평균 150원 정도가 비싼 생리대를 쓰는 여성들을 울리는 건 생리대를 만드는 ‘못된’ 회사들도 있겠지만, 논란이 일자 부랴부랴 저소득층 여성용품 지원에 나선 복지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생리컵 판매를 금지했던 식약처, 그들의 무책임과 무관심이다. 생리대는 최저생계비 산출에 포함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애매하다. 누구에겐 그저 보건 용품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반창고 같은 것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운명이자 일상이며, 또 누군가에겐 지옥이다. 딱 한 가지만 생각해보면 된다. 당신이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난다면 어떤 생리대를 쓰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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