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퇴근할까 퇴사할까」 저자 반승아씨와 나눈 대화

「퇴근할까 퇴사할까」저자 반승아 동문
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자신의 회사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퇴사 모멘트(moment)’가 없는 이상, 안정적인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씨티은행 경영혁신부에서 일하는 반승아(국문·07년졸)씨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게 내 길이 맞나’ 싶으면서도 회사가 싫지는 않아서, 딱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어서 진로 고민을 계속하는 직장인. 그런 그가 「퇴근할까 퇴사할까」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냈다. 7일 그를 직접 만나 진로 고민이 책으로 탄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가 처음 꿈꿨던 직업은 언론인이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이대학보 학술부장을 역임하며 자연스럽게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공중파 3사, 주요 일간지 등 대형 언론사에만 지원한 탓인지 결과는 계속 낙방이었다. “졸업 후에도 계속 남아 언론고시를 준비하기는 두려웠어요.” 그래서 ‘취준(취업 준비)’으로 방향을 바꾼 그에게 경력개발센터는 금융 회사를 추천했다.

하지만 그는 “난생처음 보는 재무제표” 앞에서 당황했다. 인문대 출신에, 부전공도 경영학이나 경제학이 아닌 동아시아학을 선택했기에 금융계는 낯선 분야였다. “금융 분야는 아는 바가 거의 없어서 두려웠고, ‘안 맞으면 그때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지원했어요.”

반씨는 10년도 더 지난 면접을 회상하며 “사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붙을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옆 지원자에게는 환율이나 경영 지식을 물어보던 면접관도 제게는 ‘서정주의 시 중 외우는 것이 있냐’는 생뚱맞은 질문을 했어요. 회사 동기 중 경영·경제 전공이 아닌 사람은 저밖에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는 탈락할 것이라는 자타의 예측과 달리 씨티은행에서 13년째 버티고 있다.

막상 입사를 하긴 했지만, 그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현금흐름표 등 금융업계에서 사용하는 지식은 그에게 너무 낯설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공부도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반씨는 학교에서보다 더 바쁘게 공부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해를 거듭하다 보니 업무 능력은 향상됐지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이 길이 맞나?”라는, 때아닌 진로 고민이었다.

그는 몰래 다른 회사 면접도 보곤 했다. 그렇게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여기서 못 버티면 다른 데 가서도 똑같다”는 것이었다. “만약 회사를 떠난다면, 그 이유는 다른 곳에서 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가치를 올리는 데 집중을 해보자는 거였죠.”

그는 회사에 다니며 MBA 강의를 수강하는, 일명 ‘샐러던트’(회사원과 학생의 합성어)가 돼 3년 동안 다시 학교를 다녔다. 이 3년 동안 회사 휴가 기간은 오롯이 수업과 과제에 썼다. 이밖에도 AICPA(미국 공인회계사) 학원과 영어 학원에 다니는 등 제2의 학창시절을 보내는 듯 했다. “현대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배움에 대한 근력을 길러놔야 낯선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금융, 경제와 관련된 자격증 학원 외에도 피아노, 꽃꽂이, 발레 등을 배우면서 그는 ‘배움’ 자체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 한다. “배움에서 오는 희열이 있어요. 회사 밖에서 배우는 것들과 회사에서 알게 되는 지식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하고요.”

글쓰기와 미술사 공부도 그가 ‘회사 생활 말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찾아다닌 일의 일환이다. 현재 그는 온라인 잡지 ‘아트렉처’의 미술 에세이 에디터와 웹사이트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 창작을 꿈꾸는 직장인을 위한 학원 ‘퇴사학교’의 <보통 직장인의 위대한 글쓰기>라는 수업을 듣게 됐다. 그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너무 막연해서 듣게 된 수업”이라고 말했다. “직업도 배경도 다른 분들과 퇴사학교에서 만나 서로 알아갔어요.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어요.” 실제로 「퇴근할까 퇴사할까」의 저자 네 명은 워킹맘, 기자, 라이프 코치 등으로 다양한 자신만의 회사·퇴사 이야기를 풀어낸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그, 꽉꽉 채워진 일상이 지치지는 않을까. 그는 “쉬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한다”며 번아웃의 시간도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무 계획 없이 쉬면 그 시간을 아깝게 보내버릴까 걱정됐다. “어쩌면 현대인들의 강박관념인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되는데, 걱정이 많아서 못했던 거죠.” 휴식이 두려웠던 그가 선택한 것은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는 일이었다.

그는 10년이 넘는 직장 생활에서도 이 길이 맞는지, 회사가 자신을 고갈시키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이는 현대 대다수의 젊은 세대가 하는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휴학과 퇴사가 유행처럼 퍼져나가는 요즘, 20~30대는 대학에 와서도, 취업을 해서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반씨는 그런 이들에게 “인생은 어차피 두 번뿐”이라는, 드라마 ‘Drop Dead Diva’(2009)의 대사를 전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살아도 돼’라고 인간을 방종하면서 동시에 미래에 후회할까봐 두려워하도록 몰고 간다는 것이다. “원하면 언제든 다시 인생을 시작할 수 있어요. 인생은 무수한 새 출발을 허용하거든요.”

 

4월 출간된 직장인들의 진솔한 에세이 모음집이다. 워킹맘, 기자, 외국계 금융회사 직원, 라이프 코치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이들이 ‘퇴사, 할까 말까’를 고민하며 적어 내린 생각을 모았다. 한국의 청년들은 입사 전에는 취업을 고민하고, 입사 후에는 회사 생활을 고민한다. 이 같은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4명의 저자가 회사에서 버텨가며, 혹은 퇴사 후 길을 찾아가며 얻은 경험들은 소소한 공감과 위안을 준다. 책을 쓴 ‘작가’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주위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엄마와 회사원이라는, 사회에서 부여하는 두 가지 역할을 해내기도 하고, 꿈을 찾아서 혹은 꿈을 잃어서 사표를 내기도 한다.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면서도 이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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