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소개 해주세요
이진희씨(이씨) : 이유리 교수님은 지난 학기 <Introduction to International Business> 수업에서 만났어요. NGO, 기업 CEO 등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은미 교수(김 교수) : 이유리 교수는 학부생 때부터 특출나 저도 배울 점이 많은 제자입니다. 제게 있어 학생보다 동료라는 느낌을 주는 학생이었죠. 교수 입장에서 제일 좋은 학생은 배울 점이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해요.
이유리 교수(이 교수) : 과분한 칭찬이세요. 김 교수님은 저를 포함한 동기들에게 대모님같은 분이세요. 선생님으로서 그리고 멘토로서 너무 감사한 분입니다.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스승, 혹은 그분이 해주신 한 마디가 있으신가요?
김 교수 : 미국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할 때 제 지도교수님과 제목 정하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저는 소파에 앉아있고 지도교수님은 방을 왔다갔다 맴돌다 “은미야 이건 어때?” 하고 물어보곤 하셨죠. 그러면 저는 “그건 별로인 것 같다”는 대답만 몇 십번 반복했어요. 세계적인 대가가 그렇게까지 배려하고 도와줬던 것이 멋지지 않나요?
이씨 :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이 기억에 남아요. 일본에서 살다가 6학년 때 한국에 왔는데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당시 담임 선생님은 그런 저를 많이 신경써주셨죠. 수요일 오후에 다른 학생들이 집에 다 가면 따로 남아 선생님과 일대일로 받아쓰기를 연습했어요.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죠.
이유리 교수(이 교수) : 최근 뵌 윤여진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글로벌 여성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국제학부 교수님들께서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유리가 글로벌 리더가 됐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격스러웠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만 해주신다면
김 교수 : 대학에서 학생들과 삶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미리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정답을 줄 수는 없지만 여러 보기를 제시하며 길잡이 역할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뿌듯합니다.
이 교수 : 사실 회사 및 비영리법인 대표직을 맡으면서 동시에 강의를 하는 게 시간적으로 빠듯하지만 교수직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보람되고, 즐겁기 때문이에요.
이씨 :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느껴지는 교수님이 학교에 존재한다는 게 굉장히 든든합니다.
-대학교에서 서로를 알아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박지선 교수(박 교수): 작년에 강의한 <초등과학교육방법> 과목 시간에 출석을 부르는 데 익숙한 이름이 있는 거예요. 출석부에 적힌 이름을 부르면서 확인했는데 얼굴이 하나도 안 변했더라고. 그래서 쉬는 시간에 집이 어디였냐고 물어봤어요. 초등학교 교사 시절 비슷한 학생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하니 같은 시기에 신길초등학교를 다녔다고 먼저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농담 삼아 “왜 나 아는 척 안했니”하고 물었죠.
이승아씨(이씨): 저는 사실 처음부터 교수님을 알아 뵀던 건 아니었어요. 수업 OT 시간에 신길초등학교에서 첫 교사 생활을 하셨다고 말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신기한 마음이 들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선생님’이란 어떤 존재여야 할까요.
박 교수: 선생(先生)은 말 그대로 앞서 살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잖아요. 교수(敎授)는 풀이하면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고요. 이처럼 ‘선생’과 ‘교수’는 모두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신분을 뜻하는 말이지만 의미는 조금 달라요. 제게 있어 ‘선생’이란 ‘교수’와 달리 앞서서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가르침을 주는 교수로만 남고 싶지는 않아요. 조금 더 먼저 산 사람으로서 본보기가 돼주고, 이끌어줄 수 있는 선생이 되고 싶죠.
이씨: 개인적으로 선생님이란 어떤 존재인지 묻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선생님들이 각자의 개성이 있고, 교사관이나 가치관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다만 학생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나 태도만큼은 갖추고 있어야겠죠. 학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이라면 어떤 모습이든 학생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박 교수: 앞서 말한 것처럼 가르침만을 전수하는 ‘교수’가 아닌 ‘선생’이 되고 싶어요.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후배들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조언해 줄 수 있는 그런 선생이요. 특히 초등교육과 학생들에게는 이론 외에도 실천적인 요소를 잘 알려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네요.
이씨: 학생들이 편하게 질문하거나 부탁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가끔 선생님을 보면 슬슬 자리를 피하면서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있잖아요. 어쩐지 고리타분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먼저 거리감을 두는 학생들도 있고요. 그렇게 ‘선생님’이란 존재에 마음의 벽을 쌓고 있던 학생들이 인식을 바꿔 같이 편하게 의논하면서 지낼 수 있는 선생님이 되는 게 제 목표예요.
-두 분의 인연을 소개해주세요
김도훈 교수(김 교수): 어릴 때부터 같이 다니던 친구죠. 집에 놀러간 적도 있고, 어쩌다보니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됐네요. 이소현 교수가 이화에 먼저 왔고 그 다음에 제가 왔고 김희성 교수가 왔고 그 다음에 김동근 선생이 왔어요.
-기억에 남는 두 분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김동근 교목(김 교목): 김 교수와 저는 유치원,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도 같이 다녔던 사람이라 서로 굉장히 잘 알아요.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친하죠. 그래서 나중에 이화에서 다시 만났을 때 반갑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실은 이미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김 교수: 넷이 모두 이화에 왔을 때 유치원 때 선생님인 이은화 선생님이 이곳에 계셨어요. 사제지간과 친구 다섯 명이 얽혀 몇 년 같이 학교에 있었던 시절이 기억나네요.
-두 분은 서로 교수가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김 교목: 김도훈 교수는 워낙 공부를 잘하는 수재였습니다. 워낙 열심히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김 교수: 저 역시 김 교수가 교수가 된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김 교수가 워낙 노래를 잘했거든요.
김 교목: 친한 친구지만 서로 존경 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서로의 분야에서 전문가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사석에서 만났을 때는 ‘야, 뭐, 쟤’ 혹은 ‘동근아’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죠. 생각해보면 제 나이에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게 고마워요.
-어릴적 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교수: 어릴 적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림 그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불어를 공부했는데 그게 이렇게 전공이 됐네요.
김 교목: 초등학교 4학년 때 찬양반(합창반)에 들어가 3년 정도 노래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피아노, 합창 등 음악을 많이 접했고요. 그러면서 음악이 더 좋아져 이 길로 오게 됐습니다. 그 때 기초를 다져준 선생님들께 감사하죠. 어린 시절 채플에서 매주 찬양을 불렀는데 지금은 지휘자의 입장에서 그 무대에 서있습니다. 굉장히 감격스러워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한마디 한다면
김 교수: 몇 년 안 남은 정년까지 무사히 완주합시다.(웃음)
김 교목: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었어요. 자주 만나서 점심을 먹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