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산다] 결말은 꼭 닫혀야 할까
[읽어야 산다] 결말은 꼭 닫혀야 할까
  •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 승인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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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혜(심리·04년졸) 시인·웹툰작가

카피라이터와 만화가라는 프로필을 갖고 있던 내게 작년 말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추가됐다. 영광스럽게도 문예지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것이다. 시에 몰두한 지는 약 5년정도 됐는데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줄곧 시집만 읽어댔다. 이런 독서편식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배추벌레가 배춧잎만 갉아먹듯 시인이 시만 파먹는 것이 영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삶에 시가 번져들기 시작하며 사람들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은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시 앞에 겸손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면 모두, 저는 시에 대해 잘 모르지만 혹은 제가 이 시를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하고 서두를 떼곤 했다.

물론 시를 쓰는 나도 위와 같은 화법을 쓸 때가 많다. 내게도 시는 늘 어려운 무엇, 너무 고고해서 감히 내가 속속들이 이해했다 천명하기 벅찬 무엇이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시라도 내가 100% 파악하고 장악했다고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시가 언어를 탈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 속의 언어들은 고정형이 아니다. 언어들은 늘 일렁이고 있고, 시인은 늘 기왕의 관념에서 탈주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그 역동성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런 탓일까. 시는 점점 사람들과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세상엔 시 말고도 재미있는 것이 차고 넘친다. 콘텐츠가 범람하는 세상 속에서 굳이 왜 시집을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런 비교를 해보고 싶다.

나는 얼마 전 화제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감동에 젖은 마음을 추스른 것이 아니라, 휴대폰을 열어 이 영화의 쿠키영상이 있는지 여부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상영시간이 무척 길었던지라, 여운을 감상하며 진득하게 앉아있기엔 화장실이 급했다고 변명해본다.) 그렇게 검색 창에 영화 타이틀을 검색하며 나는 알게 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숨은 의미, 결말 해석, 감상평들을 찾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사실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하나의 콘텐츠가 흥하면 유튜브엔 본인만의 해석을 담은 영상물들이 넘쳐나고, 블로그엔 개인의 논평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보며 아, 이렇게 이해하는 거구나 방향성을 찾고 그제야 안심한다. 뉴스 기사를 봐도 베스트 댓글을 알고 싶고 웹툰 하나를 봐도 남들이 뭐라고들 반응하는지가 궁금하다. 하나의 콘텐츠를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씹어 삼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공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반응하시오 하는 가이드라인이 제시된다면 얼마나 간편한가.

하지만 시는 누구도 확실한 답변을 내려주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그런 답안지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물론 학창시절 문학 시간에 우리는 시를 나노 단위로 분석한 바 있지만, 그 때 배운 것이 시의 본질이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시인 자신조차 시가 자기 손끝을 떠나면 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는 탄생한 순간부터 제 힘으로 일렁이며 나아간다. 여기엔 뚜렷한 결말도, 해석법도, 모범답안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당황한다. 시가 난해하다 여겨지고 이 난해함은 낯섦이 되고 낯섦은 불편함이 된다.

지금 나는 여타 콘텐츠와 시 사이의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조가비처럼 꽉 닫힌 결말도 좋아하고, 수학 공식처럼 확실한 해석을 좋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직 그것만을 추구하지 말고 취향을 넓히는 것을 추천한다. 도식적 해석, 닫힌 결말, 가이드라인이 있는 감상만 좇다 보면 내 사고도 도식적이 되고, 닫히게 되고, 가이드라인이 사라지면 대번에 무능해지지 않을까. 조금 버겁고 불편할지언정 사방으로 열린 글을 접하고, 그로 인해 내 감각 또한 사방으로 확장되는 경험도 해보면 좋지 않을까.

작은 비밀을 하나 알려주자면, 나는 시를 논할 때는 한없이 겸손해지지만 시를 쓸 때는 만능감을 느낀다. 흡사 작은 우주의 신이 된 것 같은 고양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 시를 읽는 사람 앞에는 다시 미미한 존재가 돼 겸손해진다. 내가 어떻게 썼든 감상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느낌, 당신의 해석엔 아무 가이드라인도 없고 정답지도 없다. 모든 시 앞에서 독자야말로 전능해질 수 있다. 안내자가 없다는 것, 그래서 나의 이해가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다는 점은 낯설고 외로운 일이지만 이를 통해 당신의 세계는 넓어질 것이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본교 심리학과 2004년 졸업. 일상툰 루나파크를 그린 만화가이자 TBWA Korea의 카피라이터다. 온라인 공간에선 루나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문예지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작품 두두가 당선돼 시인으로도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혼자일 것 행복할 것」, 「루나 파크」 등이 있다.

홍인혜 시인이 이대학보 독자를 위해 직접 그린 카툰.
홍인혜 시인이 이대학보 독자를 위해 직접 그린 카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