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순간이 또다른 존버의 시작

‘학보는 존버한다/존버는 학보한다’

며칠 전 이화·포스코관에서 보고 감탄해 마지않은 이대학보 102기 모집 포스터의 문구다. 후배님들의 유-우머 감각에 감탄하면서도, 존버의 상징으로 남아 취뽀내뽀를 써야하는 스스로가 떠올라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유행에 따라 곱창 대신 양꼬치에 고량주를 사줄 기자 친구들을 모집했다. 한때 함께 공부하며 같은 시간을 버텼던 친구들이었다. 그날의 대화에서 얻은 깨달음 하나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존버의 종착지는 승리가 아닌 또 다른 존버의 시작이라는 것.

다음날 출근을 앞둔 친구들은 전과 달리 꽤나 몸을 사렸다. 그래도 고량주를 시킨 걸 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옛날의 패기가 남아있는 듯 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대신 양꼬치를 열심히 구우며 각자의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털어놨다. “취업준비생을 앞에 두고 배부른 소리 한다” 싶겠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는 고난과 역경의 이야기들이다. 법원에서, 경찰서에서, 혹은 어디로 불려갈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버티며 취재한 이야기는 대부분 불쌍했고 아주 가끔만 영웅담이었다. 열심히 구워준 양꼬치를 먹으며 남 일인 것 마냥 듣고 있자면 친구들은 습관처럼 이런 말을 했다. “너의 미래란다.” 저런.

사기업에 들어간 친구들이라고 상황이 다르진 않았다. 증권사에 입사한 친구와의 카톡방에는 부쩍 쌍시옷이 많이 보였다.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는 과도한 업무량으로 입사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수면 부족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직장인이 된 친구가 많은 단체카톡방에는 각종 영양제 정보가 공지사항에 등록돼 있다. 다들 본인이 제일 힘든 거겠지만, 누구의 힘듦도 가벼이 여길 만한 수준이 아닌 건 확실해보였다. 목표를 이루고 원하는 일을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대학 입시가 끝이 아니었듯이, 취업도 끝이 아니니까.

취업문을 향해 돌진하다 보면 당연히 이 목표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자기소개서에 밝힌 원대한 ‘입사 후 포부’를 입사만 한다면 곧장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취준 기간이 길어지고, 관련 업계에 대한 직·간접적 경험이 쌓이면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입사 후에도 우리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긴 시간을 버텨야 하고, 어쩌면 그건 취준보다 힘든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당장의 상황이 버겁다는 이유로 그 때를 위한 고민을 김칫국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현실을 직시하고 취업 이후의 또 다른 ‘존버’를 감당할 준비가 됐는지 고민하는 게 김칫국이라면 기꺼이 원샷하겠다.

고량주를 먹고 돌아온 밤, 김칫국을 배가 터지도록 마셔가며 ‘나의 미래’를 상상했다. 나 역시 자주 뽀개지겠지, 불쌍한 나날의 연속이겠지, 현실에 치여 자소서에 지겹게 쓴 사명과 포부를 항상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 그럼에도 아주 가끔의 영웅담을 말하며 눈을 반짝일 수 있다면, 드물게 이룬 성취에서라도 그 사명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래서 언젠가는 그 포부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렇다면 고난과 역경의 ‘존버’도 할 만하지 않을까. 그러니 결론은,

‘존버는 취업한다/취업은 존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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