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에도 멈추지 않는 여성, 오늘도 화전가는 계속된다

1746년 봄 안동. 봄바람이 설레던 어느 날, 마을 부녀들이 화전놀이를 갔다. 그러자 마을의 남성 문사들이 화전놀이를 조롱하는 노래 ‘조화전가’(嘲花煎歌)를 지어 보냈다. 이 노래를 받은 부인들 중 한 사람인 안동 권씨 부인이 답가를 썼다. 제목은 ‘반조화전가’. 화전놀이를 조롱한 노래를 다시 조롱한 노래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미러링’(mirroring).

화전놀이는 봄이 되면 규방의 여성들이 두견화로 전을 부쳐 먹고, 꽃술로는 편싸움도 하면서 진 사람에게 벌주도 먹이고, 이야기도 나누다가 화전가도 지어 부르는 놀이다. 여성들은 이런 놀이를 통해 고단한 생활의 긴장을 풀었다. 그런데 이 해 마을의 남성 문사들은 ‘말세가 되어 고약한 일이 많다’고 하며 ‘깊은 규방의 부녀들이 놀 줄은 어떻게 알아서 편지를 주고받고’ 화전놀이를 갔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안동 권씨 부인은 여기에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광풍(狂風)’에는 ‘춘풍(春風)’으로, ‘수다스런 놀이’에는 ‘정결한 놀이’로 남자들이 한 말을 하나하나 되받으며 그들의 졸렬함과 무능함을 꼬집었다. ‘남자들도 마음먹고 추진하면 놀이를 갈 수 있을 텐데 자기들이 못해놓고 부녀들이 하는 일을 부러워하는 행태가 얼마나 못나고 졸렬하냐’며 “남자일 가소롭다”고 되받아쳤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더 찌른다. 「사서삼경」과 「제자백가」를 옆에 늘어놓고 공부한다고 하면서 읽어도 실천하지 못하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단청 구경하고 있나? 

조화전가에는 말만 하고 성사시키지 못하는 남성들의 자조, 놀이를 간 여성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가 섞여 있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못 간 놀이를 여성들이 성사시키고, 가장들이 마땅치 않아 함에도 놀러가고, 게다가 여성들끼리 모여 놀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가장 흉이나 본다고 하면서 “어와 고이하다 여인국 여기런가” 비아냥거렸다. 여성들은 비록 하루지만 남성들의 통제를 벗어나 자신들의 문화를 즐기는 데 성공(?)했고 이 일은 성별갈등을 드러낸 작은 사건으로 기억될 만하다.

남성들이 여성들을 비하하고 조롱한 것은 여성을 통제하려 하지만 통제하지 못하는 불안을 드러낸 것이다. 비하나 조롱은 상대의 감정을 손상시켜 상대의 자존감을 약화시키고 무력화시키는 전략이다.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이 전략은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유교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들은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의 하나로 여성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발언들을 반복해 왔다. 여성들이 이를 되받아치며 당당한 어조로 남성들을 조롱하고 비하한 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나 조화전가나 반조화전가가 그다지 심각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남성들이 그나마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고 있고 여성들도 유교 가부장제에서 요구하는 태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남성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해학적인 태도도 분위기를 더 심각하게 만들지 않는 데 기여했다. 19세기 화전가를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19세기로 오면서 화전놀이를 중심으로 주고받았던 노래들의 분위기가 더 공격적으로 변모해갔다.

18세기 경북 안동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여성혐오와 젠더갈등이 늘 잠복해 있다가 문제화되는 국면을 보여준다. 남성들의 여성혐오적 태도와 발언은 일상적인 것이었으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이 작은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여성혐오와 젠더갈등에 대응하는 여성의 당당한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여성들은 언제나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말할 수 없을 때는 침묵으로 말했다. ‘페미니즘 리부트’. 그 말대로 페미니즘이 강력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역으로 여성혐오와 젠더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혐오과 차별이 사라질 때까지 싸움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은 또 다른 타자를 만들어내는 싸움이 아니라 성(sex, gender, sexuality)으로 차별을 만들고 지금도 온존하고 있는 가부장제와의 싸움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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