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정 교수(불문학과)
송기정 교수(불문학과)

스물세 살, 유학길에 올라 도착한 파리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칼바도스를 마셔보는 것이었다. 레마르크의 「개선문」. 독일 의사 라비크와 프랑스 여배우 조앙 마두가 만나 늘 마시던 술. 내가 기대했던 맛은 아니었다. 그저 독하기만 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파리의 우울을 나는 그 술에서 느꼈다. 그 독주가 사과로 만든 증류주라는 것, 노르망디 지방에서 나오는 디제스티프 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유학 생활은 독서의 추억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내 인생을 이끈 것은 세계문학 독서였다. 무엇이 될까, 어떤 직업을 가질까 고민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대학입시 경쟁이 지금처럼 치열하지 않았기에 나는 고교시절 많은 시간을 세계문학과 함께했다. 교과서가 무거워 학교에 두고 다니면서도 두꺼운 소설책은 가방 속에 담았다. 한국소설을 읽으면서 우울했고, 영국소설 「테스」와 「주홍글씨」를 읽으면서 답답했던 나는 프랑스 문학에서 자유와 낭만을 느꼈다. 스탕달의 「적과흑」 주인공 줄리앙 소렐이 레날 부인의 방에 몰래 들어가는 장면을 읽으면서 마음을 졸였고, 말로의 「인간조건」 첫 장의 암살 장면이 주는 섬뜩한 감동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콜레트의 감각적인 글은 곱씹어 읽기에 좋았다. 그렇게 하여 나는 프랑스 소설을 읽고 분석하고 번역하는 불문학자가 되었다.

문학은 모든 학문을 아우른다. 디드로는 철학자인 동시에 소설가였고 예술비평가였다. 괴테는 철학자였고, 과학자였고, 작가이자 예술비평가였다. 발자크의 ‘인간극’에 담긴 90여 편의 소설에는 19세기 당시의 역사, 정치, 경제, 법, 과학, 철학, 예술 등 모든 분야의 지식이 담겨있다. 그의 첫 소설 「올빼미당, 혹은 1799년의 브르타뉴」를 읽다 보면 대혁명의 역사가 보이고, 「페라귀스」를 읽으면 19세기 초반부 파리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절대탐구」와 「위르셀 미루에」에는 당시 유행했던 과학 담론이, 「미지의 걸작」에는 예술론이 담겨있다. 「결혼계약」을 읽으면 당시의 결혼 풍속도를 알 수 있고, 「세자르 비로토」를 읽으면 당시의 금융 시스템과 파산에 관한 상법을 파악할 수 있다. 「잃어버린 환상」은 또 어떤가? 새로운 종이제조법의 발견, 문학 출판의 현황, 문학과 연극과 언론의 결탁 등이 훤히 보인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부터 생각한다. 그 공간 안에서의 독서는 여행의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다. 긴 비행의 경우 쉽게 끝나지 않는 장편소설이 좋다. 대하소설은 더 좋다. 그렇게 「임꺽정」을, 「토지」를, 「장길산」을, 「지리산」을, 그리고 「고구려」를 읽었다. 요즘은 책 부피를 견디지 못해 종종 e-book을 이용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종이의 재질을 손의 감촉으로 느끼면서 ‘읽는’ 책과 화면으로 ‘보는’ 책이 주는 감동은 왜 다른 것일까? 펼쳐가면서 읽는 신문이 주는 느낌과 인터넷으로 보는 뉴스의 느낌은 왜 다를까? 느낌뿐 아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화면으로 본 책보다 글로 읽은 책의 것이 훨씬 오래 남는다. 왜일까? 나는 여전히 20세기 아날로그형 인간이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러한 나의 의구심을 떨쳐버리게 한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미국의 신경심리학자 매리언 울프의 「책 읽는 뇌」가 바로 그것이다. 울프에 의하면 독서는 뇌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배워 재편성하게 하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다. 독서의 일차적 목적은 정보의 획득이다. 하지만 정보가 넘치는 현대사회에서는 책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지식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서 행위를 통해 뇌를 진화시키는 일이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내면에 집중하는 몰입 상태에 이른다. 그리하여 독서는 주어진 정보를 뛰어넘어 무한히 많은 아름답고 훌륭한 사고를 창조하게 해준다.

바야흐로 인공지능 시대다. 이제 정보나 기술이 필요한 직업은 점점 사라지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요구되는 직업만이 살아남는다고 한다. 그런데 상상력과 창의력은 타고난 자질도 아니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독서를 통해 뇌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후천적 능력이다. 독서가 밥 먹여주느냐고? 그렇다. 밥을 먹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독서다.

송기정 교수(불문학과)

 

*본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후 프랑스 파리제3대학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이화인문과학원장, 한국기호학회장, 한국프랑스학회장, 한국불어불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광기, 본성인가 마성인가」, 「스크린 위의 소설들」,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공저), 「역사의 글쓰기」, 「미루다가 영영 못 읽을까봐」 등이 있고, 역서로는 발자크의 「루이 랑베르」, 「13인당 이야기」, 콜레트의 「여명」, 르 클레지오의 「폭풍우」, 「빛나 - 서울 하늘 아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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