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좌담회, 20대 여성 3명에게 판결이 가져올 변화의 방향을 묻다
헌법재판소(헌재)가 4월11일 낙태죄 처벌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낙태죄 조항이 규정된 지 66년 만이다. 하지만 낙태죄가 당장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 불합치’ 결정은 위헌 결정 중 하나지만, 법률의 공백으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고자 특정 시점까지 법을 개정하도록 하고 그전까진 현행 법률을 유지하도록 하는 결정이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31일까지 낙태죄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는 낙태죄 관련 법 개정 전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급선무라 밝혔다. 이에 본지는 대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자 3일 정오 ECC B215호에서 약 한 시간에 걸쳐 좌담회를 진행했다. 좌담회에는 연합 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김민경 건대지부장, 이화여성위원회 활동가 김채영씨, 여성학을 부전공하는 차지윤(사회·17)씨 3명이 참석해 낙태죄 조항 개정의 방향, 의견 차이, 우려점 등을 얘기했다.
사회자(인물팀 배세정 취재부장): 66년 만에 낙태죄에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판결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차지윤씨(이하 차): 단순위헌으로 결정되지 않아 아쉽다. 단순위헌으로 결정되면 지금까지 낙태죄 조항으로 처벌받은 분들이 재심청구를 하거나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 불합치 결정 후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낙태죄가 유지되고, 이미 처벌받은 분들은 구제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낙태죄가 위헌으로 결정된 것 자체가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화여성위원회 활동가 김채영씨(이하 채): 낙태죄 처벌조항 위헌 청구가 기각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사회가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여성 인권을 위한 운동이 제도적으로 결실을 본 것 같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자: 2020년 12월 말까지 낙태죄 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즉, 개정되는 법에 따라 낙태 시기와 사유에 제한을 둘 수 있다는 뜻인데 이에 대한 의견은
‘모두의 페미니즘’ 김민경 건대지부장(이하 김): 시기와 사유에 제한을 두는 것은 낙태죄가 유해진 것뿐이지 여성을 그대로 통제하겠다는 거라 생각한다. 차라리 제한을 두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여성이 성관계에서 평등할 수 있는 권리, 원치 않는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 등과 밀접하게 결부돼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차: 영국의 경우, 산모의 신체적·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상황을 모두 고려해 낙태를 허용한다. 아이를 낳을 때 생길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한다는 게 인상 깊었다. 이런 사유라면 현실적인 타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 한 명과 정신과 의사 한 명의 상담을 거쳐 진단하는 식으로 결정하는 건 괜찮을 것 같다. 또한 현행법은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과 임신 중절 수술을 한 의사만 처벌하는데, 남성의 책임을 묻는 조항도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 임신 중절의 사유에 제한을 두는 경우 어떤 생명은 소중하고 어떤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사유란 사람에 따라 주관적일 여지가 있기 때문에 임신 중절 사유에 제한을 두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기도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이나, 현실적으로 태아가 생명으로서의 구성요건을 갖추지 않을 때는 어느 때나 어느 사유로든 임신 중절이 가능해야 한다.
사회자: 태아의 생명권 중시를 근거로 아직 낙태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 낙태죄 폐지 여부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대립 구도로 확립돼선 안 된다. 내가 낙태죄 폐지를 주장한다고 해서 생명권을 경시하는 게 아니다.
채: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대립시키는 것 자체가 이데올로기다. 인공수정이나 동물실험은 생명권을 이유로 반대하지 않으면서 임신 중절만을 반대하는 건 편파적이다.
사회자: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과 실질적으로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김: 생명권을 근거로 임신 중절을 반대한다면, 성평등 교육이나 피임 교육이 더 건강하고 제대로 이뤄지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차: 제도에 비해 사람들의 인식이 따라오지 못하면 사회적 갈등이 생긴다. 임신 중절 관련 제도에서 파생해 피임 교육,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면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될 것이다.
사회자: 일각에서는 낙태죄가 폐지되면 임신 중절 수술이 증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데
김: 낙태죄를 폐지하면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질 거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사실 낙태죄는 실효성이 없었기에 폐지돼야 마땅한 법인데, 실제로 폐지됐다고 여성들이 임신 중절을 쉽게 하는 것도 아니다. 임신 중절을 결정하는 과정도 괴롭고, 수술 후유증이 심하기 때문이다.
차: 그런 우려는 기본적으로 임신 중절이 여성에게 신체적·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란 것에 대한 이해를 못 하기에 생기는 것 같다. 오히려 남성들이 이를 역이용해서 피임을 피할까 걱정된다. 임신 중절 수술 증가를 걱정할 게 아니라, 남성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한 것에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인식시키는 게 필요하다.
사회자: 낙태죄 헌법 불합치에 대한 20대 여성으로서의 입장은
김: 사회가 전진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더디다고 생각한다. 인식이 아직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들을 설득하고 우리의 권리를 찾게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이 단편적 이슈로 끝날 게 아니라 정부 주도적 변화를 끌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차: 집회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지만 변하는 게 없어서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은 뭔가 바뀌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한 첫 경험이다. 계속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면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 생각한다.
채: 본인이 선택하지도 않은 성별로 차별당하는 사회가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든 시기가 될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이 있을 것도 같다. 사회의 주축이 될 20대로서, 이 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을 앞으로도 쭉 이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