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자·개신교 신학자 김혜령 교수와 낙태죄를 이야기하다

4월30일 오후2시 ECC에서 김혜령 교수(호크마교양대학)를 만나 낙태법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4월30일 오후2시 ECC에서 김혜령 교수(호크마교양대학)를 만나 낙태법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4월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을 앞두고 한국천주교주교회에서는 신자 약 100만 명이 반대 서명을 냈다. 혹자는 종교인이라면 모두 낙태를 금기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도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개신교 신학을 기반으로 한 윤리학자 김혜령 교수(호크마교양대학)를 4월30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낙태법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전통적 모성 신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새끼 낳는 어미 개를 성모 마리아에 빗댄 시가 있어요. 어미 개의 출산은 동물적인 행위인데, 이를 종교적 상징에 비유함으로써 출산을 본능적이면서도, 찬양받을 행위로 만든 것이죠.” 하지만 이 논리에는 모순이 있다. 본능적으로 하는 일은 윤리적으로 평가받을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종교적 표상을 적용해 칭찬하는 것은 모성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하는 근거가 될 뿐이다.

또한 김 교수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으로 논쟁이 대립되는 상황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표현은 맥락 설명이 없으면 이기적인 태도로 읽히기 쉬워요. ‘무지·문란함으로 임신을 하고선 그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윤리적인 비난을 벗어나기 어렵죠.” 따라서 최근에는 임산부의 생명권,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논쟁으로 인식이 변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출산 과정에서 희생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모태의 생명권이라는 논리도 윤리적 논쟁에서 결정적 근거가 되기엔 한계가 있다”며 새로운 논거의 보완 필요성을 주장한다.

기술의 발달로 생식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됐다. 개신교 신학에서 기술은 인간 타락의 결과물인 동시에 신이 허락한 생존 도구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교수는 현대 사회의 모성을 재정의 한다. 타자로서의 한 아이를 몸속에 품지 않을 기술적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자신의 삶에 환대하기로 결정하는 어려운 윤리적 행위라는 것이다. “윤리적 주체가 되는 것은 옳고 좋은 일이나 임신의 유지, 중단을 강제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죠.”

그는 개신교 신학에서 여전히 풀기 어려운 지점도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에서 생명은 신이 부여하는 것이기에, 당사자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임신은 신이 준 사건이에요. 하지만 개신교 신학은 신이 설정해놓은 길을 순수하게 따라가는 것이 어려운 인간 실존의 죄를 깊이 통찰해요.” 또한 개신교는 소수자와 약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한다고 그는 말한다. “인간은 살면서 실수를 저지르고 신의 명령에 불복하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낙태는 결코 장려될 수 없는 타락한 인간의 선택이지만, 그래서 더욱 인간적인 행위에요.” 기독교 신앙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고백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김 교수 같은 여성 신학자는 특정 죄와 성별에 편향적으로 주홍글씨를 씌우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다.

윤리학자이자 개신교 신학자로서 그는 “당연히 생명은 지켜야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낙태 여성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전한다. 개신교도를 위한 낙태 윤리는 필요하지만, 그걸 비종교인에게도 원칙으로 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출산의 결정은 높은 수준의 윤리적 행위입니다.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출산할 수 없는 상황의 여성을 삶의 위험에 몰아넣는 폭력적인 행위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조언한다. “‘life’라는 단어에는 생명과 삶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죠. 삶을 존중하지 않는 생명 존중은 위선이에요. 인간다운 삶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생명을 낳을 수 있을까요.” 더불어 그는 사회적 모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개인의 삶이 좌절과 희생을 겪지 않으면서 출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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