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사회·01년졸) 작가

첫 출근 날의 점심 메뉴는 우동이었다. 

스물셋. 대학 4학년이었다. <PD수첩>의 막내 작가, 말이 작가지 대본 한 줄 쓰지 못하는 자료조사로 일을 시작했다. 학교 다니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이번에는 진짜 일, 생계유지 목적의 직업이었다. 첫 출근을 하는 내게 아버지는 언제 MBC 직원이 되는 거냐고 물었다. 작가는 프리랜서고 공중파 방송사 중 작가를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하는 곳은 없다고 대답했다. 방송사에 대해서도 프리랜서에 대해서도 잘 모르시는 아버지는 그래도 열심히 해서 MBC 직원이 되라고 응원해주셨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전에도 일을 했을 것이다. 연수라든가 교육이라든가 그런 과정은 없었으니까. 점심시간이 돼 같은 팀 피디 한 명과 자료조사 두 명, 그리고 나까지 네 사람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유명한 냉모밀 전문점이었다.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냉모밀을 주문했고 나는 우동을 시켰다. 아직 가을이었지만 그날 나는 내내 추웠다. 따뜻한 걸 먹지 않으면 체할 것 같았다.

우동은 돌냄비에 나왔다. 테이블 위에서도 한참 바글바글 끓었다. 다른 세 사람이 냉모밀을 호로록호로록 삼키는 동안 나는 국물 한 숟갈, 면발 한 가닥 입에 넣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혼자 세월아 네월아 점심을 먹고 있을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뜨거운 우동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입천장이 다 벗겨지고 식도와 위장까지 후끈거렸다. 일행들이 식사를 마쳤을 때 나도 배가 부르다며 젓가락을 내려놓았지만 사실 절반밖에 먹지 못했다. 오후 내내 배가 고팠다.

처절하게 후회했다. 불쑥불쑥 그 기억이 떠올라 뱃속이 뜨거워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메뉴를 선택하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돌냄비우동을 먹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다. 적응할 수 있을까,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출근 첫날 돌냄비우동을 먹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인과관계가 성립하던 때였다. 왜 그렇게 기가 죽고 겁이 나고 눈치가 보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를 못 찾겠다. 그냥 그럴 때였다. 무조건 의심했고 번번이 속아 넘어갔다. 할 말은 제대로 못 하면서 안 해도 될 말은 늘어놓아 밤새 후회했다. 왜 나만 되는 게 없나 절망하다가도 일이 착착 풀리면 덜컥 겁이 났다. 주눅 들어 보낸 시간이 길었다.

김세희 작가의 첫 소설집 「가만한 나날」을 읽는데 그 우동이 생각났다. 「가만한 나날」에는 직장으로, 사회로, 가족 밖으로, 새로운 관계로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 대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겨우 한 걸음 내딛고는 중심을 잃어버린, 그래서 사정없이 허우적대던 어린 내가 있다. 비슷하게 휘청대느라 서로를 보살필 수 없었던 친구와 연인과 가족이 있다.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페이지 사이에 얼굴을 묻고 많이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조금 더 씩씩해졌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부드럽게 적응했던 기억은 없다. 대학 생활도 그랬다. 성인이지만 어른은 아닌 시간. 이미 낯설고 미숙한데 더 넓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야 하던 시간. 희망과 행복의 껍데기를 들추면 불안과 두려움이 웅크려있었다. 중앙도서관 3층 811번 서가에 혼자 틀어박혀 그 시간을 견뎠다. 동세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읽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언어, 내 경험, 내 감정, 내 의문, 내 불안, 내 기대가 소설 속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현재를 살아내는 이야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

나와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살며 같은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나고 따라 읽는 일은 삶의 순간순간 의외로 큰 힘이 된다. 굉장히 실리적인 행위다. 나는 이제 김세희 작가를 따라 읽으려고 한다.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가만히 지켜봐 주는 이 솔직하고 다정한 소설을 모두에게 건네고 싶다.

조남주 작가

 

*본교 사회학과를 2001년 졸업한 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16년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로 황산벌청년문학상을, 같은 해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으로 2017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며 각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저서로 소설집 「그녀 이름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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