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학문의 전당에서 고전(古典)을 택한 강의실
흔들리는 학문의 전당에서 고전(古典)을 택한 강의실
  • 장서윤 기자
  • 승인 2019.0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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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고 수업하는 〈철학의은유들〉, 〈역사와철학으로질문던지기〉, 〈정치사상의이해〉를 들여다보다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청년 취업난이 대학가 풍경을 바꾸고 있다. 학점, 토익, 대외활동, 공모전, 자격증 등 해야 할 게 많은 상황에서 고전을 읽는 데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은 사치다. 취업을 위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함해 희망과 취미 생활까지 포기한다는 ‘N포세대’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화에 공자의  「논어」,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의  「군주론」, 플라톤(Plato)의  「국가」를 읽고 있는 수상한 사람들이 있다. 

이번 학기 고전 작품을 중심으로 강의하는 교과목은 <고전읽기와글쓰기>, <사회과학고전읽기>, <실존철학>, <정치사상의이해>, <철학의은유들>, <한국고전소설읽기> 등이 있다. 본지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여전히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정치사상의이해>를 맡은 김경희 교수(정치외교학과), <역사와철학으로질문던지기>를 맡은 김세서리아 교수(호크마교양대학), <철학의은유들>을 맡은 김애령 교수(이화인문과학원)와 학생을 만나봤다.

 

△고전을 읽는 스승과 제자들

2400년 전에 쓰인 고전이 오늘날 강의실에 던져지면 재밌는 일이 일어난다. 3월27일 <철학의은유들> 수업에서는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 속에 나타난 ‘이데아’와 현대 기술인 ‘인공지능(AI)’을 비교하는 토론이 오갔다. “인간의 경험을 학습시킨 인공지능은 실제(이데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철학의은유들>은 은유와 우화를 통해 철학에 접근하는 철학 개론 수업이다. 학생들이 읽을 고전은 「국가」, 「성찰」을 포함한 17권으로 고전을 읽는 수업 중 그 수가 가장 많았다. 목록에 있는 책을 전부 읽는 건지 묻자 김애령 교수는 “교양 수업이기에 무거운 철학 서적을 다 읽기는 어렵다”며 “수업을 통해 고전 텍스트의 일부를 보여주고 흥미를 갖게 해 학생들이 직접 고전으로 찾아가도록 유도한다”고 답했다.

<역사와철학으로질문던지기>는 2016년 코어(CORE)사업에 선정되면서 생긴 교과목이다. 학생들의 인문학 역량 강화가 수업의 목적이다. 김세서리아 교수는 “역사와 철학 안에서 고전을 읽고, 이를 기반으로 현재 우리 삶에 유의미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강의의 목표”라고 전했다. 이번 학기에 읽을 책은 「가부장제의 창조」, 「논어」, 「안티고네」다. 

정치외교학과 전공과목 <정치사상의이해>도 고전 읽기가 중심이다. 학생들은 이번 학기 ‘권력’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감시와 처벌」, 「국가론」, 「군주론」, 「폭력론」, 「3차원적 권력론」을 읽을 예정이다. 김경희 교수는 수업에서 고전을 읽는 이유에 대해 “학생들에게 가공된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고품질의 유기농 식품을 먹게 하고 싶기 때문”이라며 “교수의 역할은 사회자로서 자연 식품이 갖고 있는 독성을 미리 먹어보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렵기만 고전,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철학의은유들> 수강생이라면 다들 손에 독서 노트를 들고 다닌다. 김애령 교수가 추천하는 고전 읽기 방법은 바로 독서 노트다. 노트에 책의 내용을 필사해 이를 갖고 다니며 자기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아날로그적인 방법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김애령 교수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한 읽기 방식에만 머물면 책을 천천히 꼼꼼하게 읽는 능력을 잃게 된다”며 “고전을 읽을 때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읽는 습관을 가지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내 상황에 맞게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며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세서리아 교수는 <역사와철학으로질문던지기>에서 고전을 읽기 전에 학생들과 ‘주제 접근 토론’을 한다. 이 시간에는 고전의 주요 내용과 관련한 현재의 문제를 토론하며 문제 의식을 갖도록 한다. 예컨대 학생들은 가족, 가부장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눈 뒤 「논어」를 읽는다. 이후 「논어」에 나타난 유교적 가족 문화의 특징을 알아보고 현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탈피할 대안을 고민한다.

교수들은 입을 모아 고전을 읽고 현실의 문제와 연결 지어 생각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사상의이해> 수업에서는 스티븐 룩스(Steven Rooks)의 3차원적 권력론과 탈코르셋 담론을 비교하는 토론이 있었다. 김경희 교수는 고전을 읽을 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과 토론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고전은 정리된 책이 아니기에 서로 읽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며 “백 명이 읽으면 모두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풍부한 지식을 서로 교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삶에 대한 이해가 먼저

<철학의은유들> 수강생 이은빈(디자인·19)씨는 “고등학교까지 틀에 박힌 교육을 받았기에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배우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고전 읽기는 누군가 걸어왔던 발자국을 따라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이라며 “그 후에는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의 발자국을 새로 남겨야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김애령 교수는 소설가 김영하씨의 말을 인용해 “취업할 때 지원자에게 스펙을 요구하는 건 그 사람의 능력을 쓰겠다는 말”이라며 ‘뺏기지 않을 자산’을 만들 것을 강조했다. 김애령 교수는 “그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며 “대학 또한 뺏기지 않을 자산을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학 교육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김세서리아 교수는 “많은 학생이 취업 준비를 위해 외국어, 컴퓨터 기술 습득에 치중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직무적성검사, 로스쿨, 치의학전문대학원 등 시험에서도 사회성, 창의성,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통합형 인재채용을 추진하고 있다”며 “실무 지식뿐만 아니라 고전 읽기를 통해 의사소통능력과 종합적 사고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취업을 위한 기관으로 변해가는 것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김세서리아 교수는 “대학은 기술과 실용성에 초점을 두는 교육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며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에는 인간성을 고민하는 교양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희 교수는 “대학은 학원이, 교수는 학원 강사가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자기 이해가 없으면 변화에 휩쓸리기 쉽다”며 “불안한 마음에 사회가 강요하는 일반적인 흐름을 쫓기보단 삶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지혜를 갖고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