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본교를 포함한 대학가 내에서 학문 간 융합 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작년 5월 교내 언론기관-총장 대화에서 김혜숙 총장은 “학문이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시대와는 달리 학문 간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또 2019학년도 입학식에서 그는 전공을 넘어 타 영역과의 창의적 융합을 준비하고 훈련받을 수 있도록 학사제도를 유연화했다고 전했다.

 

그래픽=이화미디어센터 조채린 조교

 

최근 다양한 전공 공부를 통해 지식을 쌓고 진로를 설계하려는 학생이 증가하고 있다. 인문과학대학(인문대)과 엘텍공과대학(공대)은 대학교육의 변화 흐름에 따라 융합전공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2019학년도 1학기 기준으로 운영 중인 융합전공은 ▲인문경영 ▲인문예술미디어 ▲인문테크놀로지 ▲바이오신소재공학 4개의 전공이 있으며 전공생은 174명이다.

융합전공이 개설된 후 3년이 지났다. 약 174명의 학생이 전공 과정에 있지만 생소한 이름 때문에 전공 신청을 망설이는 학생의 궁금증이 크다. 본지는 4월 부·복수전공 신청 기간을 앞두고 본교 융합전공을 소개하기 위해 직접 전공 수업에 들어가 봤다. 이번 호에서는 융합전공 중 전공생이 133명으로 가장 많은 ‘인문예술미디어’(인예미) 전공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 제작을 배우고 싶다면

인예미 전공에서는 인문학이 미디어 환경에서 콘텐츠로 생산하고 활용되는 데 필요한 이론과 실제를 배운다. 실기를 포함한 전공이기 때문에 인턴십, 실험, 미디어 창작을 통해 경험을 쌓은 학생이라면 실험 실습 보고서로 졸업논문을 대체할 수 있다.

본 전공의 목표는 ‘이야기’가 있는 콘텐츠 제작자를 배양하는 것이다. 전공 주임을 맡은 이형숙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스스로 ‘인문학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술, 미디어에 관심 많은 학생에게 본 전공을 추천한다. 인문대는 해당 학생들에게 촬영 및 편집이 가능한 미디어랩실(Media Lab)을 지원한다. 이 교수는 “미디어 콘텐츠 스토리 개발자, 프로듀서, 영화감독 등 다양한 진로로 진출이 가능한 전공”이라며 전공을 소개했다.

개설 과목에는 전공필수 과목 3개를 포함한 11개의 전공 교과목이 있다. <인문학과디지털서사>, <원천서사와콘텐츠기획>, <비주류대중문화예술의미학> 등 인문학을 통해 예술과 미디어에 접근하는 수업이 운영된다.

인예미 복수전공생인 김지연(커미·17)씨는 영화 비평 분야의 진로를 희망한다. 김씨는 영화 이론과 문화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과 이를 표현해내는 방법을 학습하고 싶어 전공을 결정했다. 수박 겉핥기식 학습이 아닌 깊이 있는 인문과 예술, 미디어 간의 연계학습이 가능해 만족하고 있다.

인예미 복수전공 2년 차인 정가을(커미·16)씨는 “주전공에서 원론적 지식을 배운다면 인예미 전공에서는 현재의 미디어 시장 흐름을 읽고 지식을 적용하는 중”이라며 “정규 수업 외에도 촬영, 편집, 시나리오 워크숍과 전문가 초빙 강연 등도 있어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주전공이 아닌 학생도 전공하는 데 부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업 속으로 : <원천서사와콘텐츠기획>

2017년 ‘도깨비 신드롬’을 일으킨 tvN 드라마 ‘도깨비’(2016)의 모티프는 어디서 왔을까. 드라마를 비롯한 21세기 콘텐츠의 인문학적 서사 방향을 공부하는 수업이 있다. 인예미 전공생들이 뜨거운 호응을 보내는 김수연 교수(국어국문학과)의 <원천서사와콘텐츠기획> 수업을 14일 방문했다.

“「사피엔스」 담당 4명 손들어주세요. 전원 출석이네요.” “「종의 기원」 4명? 다 왔네요.”

학관 503호는 독특하게 작품별 발표자 명단으로 출석을 부르는 김 교수의 활기찬 목소리로 채워졌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이 진행되는 해당 과목은 화요일에는 교수 중심의 강의 형식으로, 목요일은 학생들의 발표와 김 교수의 피드백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이날은 수강생 6명이 논의 작품 두 개에 대해 약 3분간 요약 발표를 했다.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쓴 「이야기 동양신화」의 첫 발표자는 “저자는 어린 세대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서양의 이야기로 인해 획일화된 상상력을 갖게 될까 우려한다”며 “동양 신화를 통해 동양인이자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도록 하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두 번째 발표자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신 ‘제우스’와 중국 신화 속 ‘황제’를 비교하며 동양인이 공유하는 원천 서사를 찾아 발표했다.

수업명에 포함되기도 한 ‘원천 서사’란 문학적 존재인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이야기를 말한다. 원천 서사는 인간에 내재한 욕구를 반영해 콘텐츠를 성공으로 이끈다. 활용 사례로는 드라마 ‘도깨비’(2016)에서 주인공이 복숭아나무를 꺾어 귀신을 쫓는 장면이 있다. ‘고대 복숭아 나무와 신들의 관계’라는 서사가 사용돼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발표는 유발 하라리 작가의 책 「사피엔스」를 담당한 수강생 2명이 진행했다. 이 작품은 사피엔스가 현재 존재하는 유일한 인간 종이 된 이유를 밝힌다. 또한 기존 역사학자의 관점과 달리 ‘자기감정을 이야기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역사를 본다. 발표를 맡은 학생은 사피엔스가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제국을 지배해 왔다고 설명했다. B.C. 1760년 함무라비 법전과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의 공통점은 바로 ‘상상의 질서’. 이는 결국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신뢰하는 것 또한 원천 서사 중 하나라는 의미다.

이어진 피드백에서 김 교수는 역사 또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라며 ‘다른 시선으로 역사 보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로 농업 혁명은 인간에게 유익한 역사로 기록됐지만, 이면에는 면역력을 감퇴시키고 지금까지 인간을 토지에 얽매이게 했다는 사회적 부작용이 있었다.

김 교수는 본 수업의 핵심이 “21세기 콘텐츠가 발견해야 할 심층 서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시야 넓히기”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 주제가 된 도서의 내용에는 김 교수가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이 녹아있다. 수강생이 기존 콘텐츠를 분석하거나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는 데 필요한 시각과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이야기 동양신화」 등의 도서는 원천 서사의 확인과 재해석을 돕고,「사피엔스」와「종의 기원」등의 작품은 콘텐츠의 심층 서사에 대한 관점 정립을 이끈다.

수업의 최종 목표는 학기 말의 개별 콘텐츠 기획이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 기획을 위해 중간고사 이후부터는 매시간 발표와 피드백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지난 학기 김 교수의 수업에서는 ‘ECC를 관광지가 아닌 명소로 만드는 공간 기획’, ‘저승 서사를 활용해 만든 단편영화 콘티’, ‘천생연분 원천 서사를 활용한 트랜스 미디어 서사 생성 프로젝트 기획’ 등 기발한 콘텐츠 기획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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