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활동 중인 강순열 동문, 2019년 초 영국서 개인전 열려

Flowing of Dawn(2007)제공=본인
Flowing of Dawn(2007)제공=본인

안개가 자욱한 날, 영국 잉글랜드 남부 지역 서리(Surrey)에 위치한 메뉴인 홀(The Menuhin Hall) 가운데 안개 속 바다 그림 하나가 걸려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아니다. 실로 한 땀 한 땀 짠 듯하다. 이 작품의 이름은 ‘Flowing of Dawn’(2007). 런던에서 예술가로 활동 중인 본교 출신 강순열 작가(가정관리·77년졸)가 개인전 ‘dialogue’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제 작품은 대부분 명상적인 분위기예요. 바다를 배경으로 해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수평선이 잔잔하게 바다를 쳐다보는 듯하죠.”

‘dialogue’는 대화란 의미다. 이는 작가와 관객, 작가와 작품 등의 사이에서 소통하는 대화를 의미한다. 거창한 대화가 아닌 작은 대화도 좋다. 이 때문에 강 작가는 “일부러 알파벳 소문자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곳 메뉴인 홀(The Menuhin Hall)은 전시장이자 공연장이다. 강 작가의 작품들은 음악회를 보러 온 사람들을 기다리며 복도에 늘어서 있다. 관람객은 음악을 감상하기 전 눈으로 먼저 예술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전시회 1층은 태피스트리(tapestry) 작업물, 2층은 페이퍼 작업물로 구성돼있다. 강 작가의 작업 변화를 한 공간에 담은 것. 그는 “예전에 전공으로 한 건 섬유예술 중에서도 태피스트리였다”며 “2012년부터는 페이퍼 작업을 주로 한다”고 말했다. 태피스트리란 다양한 색실로 그림을 짜 넣는 직물 공예를 말한다.

Meditation(2006)제공=본인
Meditation(2006)제공=본인

현지 반응이 좋은 태피스트리 중 하나는 ‘Meditation’(2006)이다. 태피스트리에 희미한 동그라미가 보인다. 원 부분만 실의 색을 조금 다르게 한 효과다. 이 ‘원’은 강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최근 작품까지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그는 “원이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며 웃었다.

원을 그리기 시작한 건 강 작가가 페이퍼 작업을 시작한 것과 맞닿아 있다. 1997년 골드스미스 런던대학교(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는 사적인 편지 120통 정도를 가지고 있던 게 문득 떠올랐다. 손으로 쓴 편지였다. 강 작가는 그 편지를 똑같이 다른 종이에 옮겨 쓴 뒤, 태워버렸다. 타고 남은 재로 원을 그렸다. “치유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 어렸을 적 배가 아프면 엄마가 배를 동그랗게 어루만져 줬던 기억이 났어요. ‘엄마 손은 약손’ 하면서 말이죠.”

페이퍼 작업으로 넘어온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섬유는 실이나 천만 다루는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 작가는 201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페이퍼 작품만을 작업하고 있다.

“종이에 아크릴 컬러를 칠한 뒤 분해했어요. 그리고 다시 그 조각조각을 다른 모양으로 재창조하는 거예요. 처음의 작업이 다른 작업으로 바뀐다는 것에 흥분했어요. 계속 이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 2012년 10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강 작가는 그 슬픔을 작품으로 승화했다. 종이에 ‘아버지’를 계속해서 썼다. 그리고 잘랐다. 그는 “아버지를 보내는 일종의 의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잘린 종이를 다시 원 모양으로 붙였다. 작업 기간은 약 한 달. 쓰고, 자르고, 다시 붙이는 작업을 통해 강 작가는 자신을 스스로 치유했다.

‘마음’을 쓴 종이를 작게 자른 뒤 원 모양 안에 한 조각 한 조각 배치하고 있다.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마음’을 쓴 종이를 작게 자른 뒤 원 모양 안에 한 조각 한 조각 배치하고 있다.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종이와 핸드라이팅(hand writing), 그리고 원. 마침내 강 작가의 최근 작품들엔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있었다. 특히 그는 한지와 붓, 한글을 많이 사용한다. 작업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한글은 ‘사랑’과 ‘마음’이다.

“붓으로 글을 쓰기 전에 먹도 직접 갈아요. 거기부터 제 작업의 시작인 거죠. 태피스트리와 마찬가지로 이 작업도 명상적이라 할 수 있어요. 붓글씨로 쓰고, 자르고 다시 붙이는 건 시간도 아주 많이 걸려요. 그냥 붙이는 게 아니거든요. 한 조각씩 다 조정해서 ‘아,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 때 붙여야 해요.”

강 작가는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버려진 것들을 재사용한다. 버려진 종이를 모아 죽을 만들어 다시 새 종이로 재탄생시키기도 하고, 버려진 씨디를 모아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예술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만난 강순열 작가사진=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영국에서 만난 강순열 작가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본교 가정관리과를 졸업한 그가 섬유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동생의 친구가 어느 날 실로 짠 그림을 가져온 것이다. 거기에 반해버린 강 작가는 섬유예술을 배우기 위해 고민하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일본을 가거나 문화센터에서 섬유예술을 배우는 등 준비를 단단히 하고 1983년 본교 대학원 섬유디자인과에 입학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호원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강 작가는 전임 교수가 되기 위해 학위를 따고 싶기도 하고, 전시회를 끝낸 뒤 새로운 것을 접하고 싶어 영국으로 떠났다. 그는 “1991년 개인전이 끝나고 저의 예술에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유럽이 좋기도 하고 영국에 동생이 살고 있어서 영국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섬유예술을 배우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찼던 그는 1994년 웨스트딘예술대학교(West Dean College of Art)에서 학위를, 그 후 골드스미스런던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게 됐다.

이후로도 계속 영국에서 활동했지만, 강 작가와 이화의 인연은 계속됐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동안 매년 봄 학기 한국으로 가 본교에서 섬유예술을 강의했다.

“이화는 제가 사랑하는 곳이에요. 옛날에 학교 다닐 때 중앙도서관에서 쭉 내려오는 길을 정말 좋아했어요. 지금은 비록 없어졌지만, 저녁에 그 길을 걸으면 낭만적이었거든요. 채플에 늦지 않기 위해 대강당 계단을 오르던 것도 기억에 남네요.”

섬유예술가로 알려진 강 작가지만 그는 ‘섬유예술가’로 불리길 거부한다. “흔히 섬유예술(fiber art)을 천을 다루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섬유는 천만 다루는 게 아니라 종이도 다루고 금속도 다뤄요. 예전에 태피스트리를 주로 했을 때는 섬유예술가란 호칭이 마음에 들었어요. 근데 지금은 설치작업이나 사진 작업, 페이퍼 작업 등으로 영역을 넓혔기 때문에 그냥 ‘예술가’로 불리면 좋겠어요. 이제는 예술 장르를 구분 짓는 게 의미 없어요.”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