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설레는 일이기에, 문학으로 세상과 이야기하다
아직 설레는 일이기에, 문학으로 세상과 이야기하다
  • 박채원 기자
  • 승인 2019.0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혜진 편집자
박채원 기자 cw.ante.park@ewhain.net

 

그의 소라색 블라우스는 담담하지만 강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블라우스는 박혜진 편집자(국문·10년졸) 자신의 색을 어렴풋이 보여주고 있었다. ‘페미니즘 입문서’로서 자리매김한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낸 민음사 한국문학 팀 박 편집자를 지난 12일 민음사 본사에서 만났다.

“제가 책을 만들어서 이렇게 판매량이 높았던 경우도 처음이지만 무엇보다 사회에 미쳤던 영향력이 아주 컸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문학이 힘없는 예술 장르로 생각이 됐다면 이제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박 편집자에게 「82년생 김지영」은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문학의 힘을 경험하게 한 책이다. 2년간 국내 100만 부 이상 판매, 판권에 대한 세계적인 러브콜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론화되지 못했던 사회적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대만, 일본에서의 출간 후 뜨거운 반응은 그에게 ‘여성’ 이라는 문제가 세계에서 하나의 공통어로 통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가 처음 원고를 읽고 출판을 결심한 이유는 단순히 조남주 작가(사회·01년졸)의 글이 유쾌하고 가독성 높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책의 일화 속 다양한 종류의 감정들은 박 편집자가 삶 속에서 경험했던 것들이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사적인 감정으로 이야기되던 것들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감정인 것을 알게 해줬다. 그는 책의 출간으로 그동안은 사회적으로 이야기되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던 감정들을 언어화해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감수성의 천재가 있다면 조남주 작가가 아닐까요.” 박 편집자는 조 작가가 우리 모두 느끼고 있지만 뚜렷하게 잡아내지 못했던 감정들을 소박하지만 정확한 언어들로 표현해 낸다고 말한다. “「82년생 김지영」 출판을 기점으로 성인지 감수성에 있어서 하나의 공통된 감각을 만들어 냈어요. 작품의 이전과 이후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젠더에 대한 표준 감각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패션이 트렌드에 민감하듯 책도 그렇다. 문학도 하나의 동향, 형식이다. 최근 많은 문학이 사회 문제를 담고 소수자 문제를 소재로 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상호적 관계’를 말한다.

“작가들이 세상과 격리된 곳에서 작품을 쓰는 게 아니잖아요. 세상 속 한 사람이 작가로서 작품을 쓰다 보니 사회적 문제를 담게 되죠. 또 독자들의 생각과 감각이 작품에도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최근에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를 드러내고 참여적 성향이 짙은 작품들을 많이 쓰는 이유는 독자와 작가 모두 그만큼 현실의 문제에 문학적으로 질문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같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열망과 욕구가 강하게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이런 작품들이 나오면 독자들이 많이 읽고, 그러면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죠.”

편집자이자 문학비평가로서 그에게 책의 최신 동향 파악은 중요한 임무다. 트렌드 파악의 좋은 지표는 최신 수상작들이다.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The Man Booker Internatioinal Prize), 프란츠 카프카 문학상(The Franz Kafka Prize), 노벨 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 등이 발표되고 책이 출간되면 수상작은 읽어야 할 도서 1순위가 된다. 읽고 싶어서 읽는 책들도 있지만 일 때문에 읽는 책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 것이 직업이 되다보니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위해서는 사투를 벌여야 한다. 항상 읽어야 할 책이 이만큼씩 눈앞에 쌓여 있다. 항상 눈앞에 쌓여 있는 책들을 무찌르고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위해 그가 세운 전략이 있다. 바로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같게 하는 것. “이왕 하는 거 다 즐기면서 하는 거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이 있는 상태라는 거예요.”

그는 편집자 일이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아직까지는 지나치게 설렘을 동반한 작업이라고 말한다. 오는 5월 조 작가의 신작과 8월 배삼식 작가의 희곡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박 편집자의 목소리는 좋아하는 작가들과의 작업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글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을 보고 그 작가가 너무 좋아서 계약을 해요. 그러면 그 매력들이 제가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아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표현되죠. 새로운 표현 방식을 통해서 제가 좋아했던 매력들이 변주되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가장 먼저 좋았다고 표현하는 과정들이 일이라고 하기에는 아직까지도 너무 설레요.”

최근 인상 깊게 남은 책으로는 「태고의 시간들」과 「비바, 제인」을 꼽았다. 1, 2차 세계 대전 후 20세기 폴란드의 이야기를 담은 「태고의 시간들」을 소개하며 박 편집자는 “우리나라가 문학적으로 한국전쟁과 전후에 대한 충분한 사색이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전쟁은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전 세계가 함께 경험하고 있는 사건이잖아요. 분명히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보이지 않는 어떤 부분들이 점령당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발굴하면 소설들도 더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여성에 대한 얘기만 하나요?”라며 그가 던진 두 번째 책은 「비바, 제인」이다. 정치 스캔들에 휘말린 젊은 여성이 어떻게 파멸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를 다룬 소설이라며 재차 유쾌한 책임을 강조했다. “여성을 다룬 책이어서가 아니에요. 정말 재미있어요. 재치 있고 발랄하고. 책 속의 여성 등장인물들이 일종의 연대를 이뤄요. 그 방식이 자연스럽고 또 이런 사안들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죠.”

박 편집자에게 책은 엔진이자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자극제다. 다소 진부한 말일 수도 있겠다며 농담을 했지만 그의 비유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굉장히 무기력하거나 권태롭다고 느낄 때 스스로를 돌아보면 무언가를 읽고 있지 않을 때라고 말한다. “좋은 것들을 읽으면 다시 자극이 되고 새로운 시각이 생겨요. 너무 촌스러운 말일지는 몰라도 책은 저에게 있어서 일종의 동력이에요.”

책은 그가 조금씩 성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책을 한 권 한 권 흡수해서 읽으면 읽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변화가 생긴다고 말한다. 작은 변화들을 겪다 보면 성장이 대단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그런 변화가 쌓여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2년에 한 번씩 사람의 세포가 전부 다 바뀐대요. 물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런데 사실 우리는 크게 다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박 편집자는 그 이유를 ‘사고’에서 찾았다. “생각하는 게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비슷한 언어구조로 사고를 하고 판에 박힌 통사 구조로만 살잖아요. 그런 것에 자극을 주는 것이 책인 것 같아요. 관습화된 문장, 틀에 박힌 사고를 자극해 성장해 나가는 것 같아요. 겨우겨우 성장하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에 그는 주저 없이 ‘회고록’이라고 답했다. 순진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작가가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숨기고 싶은 부분은 쓰지 않을 수 있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 권의 책보다 개인의 내면을 가깝게 경험하게 해주는 매개체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는지, 어떻게 슬픔을 극복했는지... 자신이 느꼈던 고통과 슬픔은 그만큼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저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작가를 묻자 박 편집자는 “함께 작업하고 있는 작가가 많다”며 ‘노코멘트’로 웃음 지었다. 이어 함께 작업 중인 작가들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그의 눈에서는 여전히 그 첫 설렘이 느껴졌다.

 

△82년생 김지영 편집자 박혜진이 이화인에게 추천하는 책 3권

 

「이방인」알베르 카뮈 / 민음사

우리는 종종 절반의 관습과 절반의 습관에 의해 굴러가는 오래된 기계처럼 산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문학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 첫 문장은 우리 삶에 드리운 모든 허위적 명제를 의심하게 만든다. 비록 그것이 부모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마음일지라도.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 민음사

내가 속한 사회, 내가 속한 집단의 부조리로부터 눈 뜨기 위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 호기심과 합리적 의심, 그리고 열심. 「당선, 합격, 계급」은 공채 시스템의 오류를 비판하는 논픽션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좀 더 건강한 시민으로 만들어 주는 태도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마일리스 드 케랑갈 / 열린책들

인간으로 34년째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나는 인간성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조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장기 이식을 둘러싸고 병원에서 벌어지는 들끓는 조용함에는 인간성에 대한 질문과 답이 전부 있다. 깊게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무조건 선물하는 책이다.

 

 

 

 

 

추천사=박혜진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