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30주년, 여성이 역사의 주체가 되도록

여성신문 김효선 대표이사 제공=본인
여성신문 김효선 대표이사 제공=본인

언론인이자 언론사 경영인. 냉철할 것으로 생각했던 여성신문 김효선 대표이사는 예상과 달리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회색 스웨터와 검은 바지 차림의 그는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1월10일 ECC B144호에서 김효선 대표이사를 만났다. 

그는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여성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2003년 여성신문 대표이사가 됐다. “제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어요. 당시 여성학에 관심도 있었고요. 여성 문제를 다루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곳이 여성신문이었죠.”

그가 기자로 활동할 당시만 해도 여성신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왜 여성 얘기만 다루냐, 성폭력만 다루는 신문이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아내가 신문을 읽고 쌈닭이 됐다’며 남편이 신문을 못 읽게 한 사례도 있었다. 

부정적인 인식은 회사 경영에도 영향을 줬다. 빨간 딱지(압류한 물건에 붙이는 표시)가 붙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움이 지속되는 상황에도 여성신문에 남아있었다. 신념 때문이었다. “여성 이슈를 다루는 신문이 있어야 했어요. 이 신문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왔죠.”

여성신문은 그의 노력과 함께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지난해 창간 30주년을 맞이했다.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며 매체에 담긴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그는 과거에 비해 세상의 주류가 변하고 있다고 했다. 그 징표로 조선일보 여성 기자의 보육 관련 기사가 1면 탑에 실린 일을 예로 들었다. “아직 바뀌지 않은 게 많고 그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세상은 분명 바뀌고 있어요.”

여성신문은 매주 금요일 3만 부씩 발행되며 트위터 팔로워 수는 약 20만 명이다. 그는 여성신문이 여성학에서 나온 언어들을 대중적인 언어로 번역한다고 했다. 그는 “대중매체는 페미니즘 언어를 내용과 본질은 유지하되 일반인들이 더 잘 소화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며 “나아가 페미니즘의 전달 수단이 유연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여성신문을 통해 여성이 역사의 주체가 되도록 만들고자 한다. “여성들이 역사를 바꾸는 주체가 되는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본질적으로 해결된 사건은 없었어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죠.” 

30년 간 다양한 경험을 해온 그의 가족 속 모습은 어땠을까. “엄마, 아내의 역할에 미진할 수밖에 없었지만, 바쁜 와중에도 최선을 다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인생은 제각각의 모습 그대로 아름답고 가치 있으니까요.”

‘여성신문 지킴이’, 그가 가진 가장 큰 정체성이었다. 언론사를 지키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명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신문이 혼자의 힘으로 성장한 게 아닌 십시일반 많은 여성의 힘이 합쳐진 회사라고 했다. “사람들은 주식 배당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기부 개념의 투자였어요. 그 모아준 돈의 가치가 너무 귀하니까 대표이사인 제가 그걸 지켜야 하죠. 그렇기에 제가 멈출 수 없어요.”

그는 84년도 본교 대학원에 들어와 여성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여성학 1세대로서 현 페미니즘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최근 페미니즘이 과격해진다는 우려도 있지만 중요한 건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직시하는 거예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사회적 모순에 대해 젊은 여성들이 분노하고 표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어떤 면에서는 여성들이 더 솔직하고 과격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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