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인을 위해 편하게 마음도 나누고 심리적 지식도 나누는 배꽃수다방이 학기 다시 오픈했어요. 학기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지만, 한편에 쌓아뒀던 고민들도 다시 올라오지요. 이것 저것 분주하기만 하고 삶의 리듬이 생기지 않는다면, 마음을 내려놓고 안의 생각, 감정, 욕구를 하나 하나 정리하고 돌아보면서 옷장의 옷을 정리하듯 마음을 살피고 정리하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면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난 조언들을 감사히 읽은 배꽃입니다. 저는 모든 일(청소, 일기, 과제, 시험공부 등)에 벼락치기 하려는 저 자신이 고민이에요. 마감 시간까지 일을 자꾸만 미루게 됩니다. 저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모든 게 완벽히 준비돼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일기를 써도 무조건 펜, 스티커, 마스킹테이프 상자까지 다 준비해놓고 쓰려 해요. 이렇게 일을 시작해도 완벽히 해내지 못할 바엔 아예 대충 해버려요. 그럼 결과가 안 좋아도 '제대로 안 했으니까' 라는 자기 방어가 생기거든요. 그러면서도 못해내는 자신을 지나치게 깎아 내려요. 사람마다 일을 하다보면 안 되는 게 있기도 한 건데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하면서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너무 비하합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완벽하게 갖추고 하려는 고집을 버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부정적인 평가에 무뎌질 수 있을까요?

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사연을 주신 배꽃님은 과제, 시험과 같은 중요한 일을 미루고 벼락치기 하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계시네요. 실제로 상담을 하다보면 배꽃님과 같은 고민을 하는 이화인들을 의외로 많이 만나게 됩니다. 특히 일을 완벽하게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서 시작과 끝을 연기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리고 기준이 높아서 일을 마치고 나서도 만족감이 적고 과제 수행 자체를 즐기지 못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사연을 주신 배꽃님은 일기나 청소와 같이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일에도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시작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 자신이 고민이라고요. 그런데 이러한 특성은 배꽃님이나 우리 이화인만의 고민은 아닌가 봐요. 진로상담학자인 존 크롬볼츠는 예일대나 미국의 일류대를 다니는 대학생들이 가진 큰 문제 중 하나는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바쁘다거나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그 일을 시작할 수 없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라는 결과를 발표했으니까요. 크롬볼츠는 이런 행동특성을 ‘아직은 때가 아닌 삶’이라고 명명했지요. 무엇을 하기 전에 망설이고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고 자신에게 말하는 경향이에요. ‘펜이 갖춰지면… 책상을 정리하면… 특별한 영감을 받으면… 좀 더 준비가 되면… 완벽하게 확신이 서면… 분명한 계획을 세우면… 내 능력의 한계라는 사고를 극복하면…’ 그때 비로소 그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거지요. 많은 훌륭한 학생들이 삶의 부족한 부분만 보면서 무엇이든 차일피일 미루고 나쁜 습관과 쓸데없는 걱정을 반복한다고 보았습니다.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이를 ‘소용돌이 요인(the suckage factor)’이라고 표현했는데 너무 잘하려고 하는 탓에 결국 모든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상을 뜻합니다. 

테드 올랜드와 데이비드 웨일런의 저서 「예술과 두려움」에 언급된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소개해 볼게요. 도예반의 한 강사가 학생들을 두 반으로 나누어 채점 기준을 달리해서 수업을 했습니다. A반은 한 학기 동안 도자기 50개를 제출하면 A를 받았고 B반은 한 학기 동안 최고로 잘 만든 1개의 작품만 내면 되고 그것으로 평가를 받도록 했습니다. 어느 반에서 더 멋진 작품들이 나왔을지 예측이 되시나요? 놀랍게도 우수한 작품은 모두 A반에 속해 있었다고 합니다. B반의 학생들은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정교한 계획을 세우는데 시간을 보내다가 1개의 작품도 제대로 빚지 못하고 학기를 마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제출된 1개의 작품도 연습이 턱없이 부족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어요. 반면 A반 학생들은 작품의 질과 상관없이 많이 빚으면 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날 때마다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재료를 다루는 실력도 손재주도 더 늘었고 개중에 멋진 작품들도 있었던 것이지요. 

아무 생각 없이 미숙하면 미숙한 대로 바로 뛰어드는 것, 그것이 바로 배꽃님과 같은 학생들에게 필요한 자세는 아닐까요? 그동안 받았던 인정과 칭찬, 훌륭한 능력에 대한 피드백이 오히려 미숙한 것에 대한 수치심, 좌절에 대한 낮은 인내력,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도록 했을지도 모르지요. 어려서부터 성공에 대해 받은 격려와 피드백이 성장해서도 어떤 일이든 최고의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믿음과 평균을 웃도는 성공을 추구하도록 우리의 생각을 고정시켰을 지도 모르지요. 

이제 배꽃님의 시작을 제한하고 도전을 가로막는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작은 시작 행동에 주목해 보세요. 크롬볼츠는 ‘아무리 삶이 혼란스러워도 언제든 긍정적인 한 걸음은 내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변화를 원한다면 작은 행동부터 시작해보라고요.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여러 펜으로 쓰인 아름다운 일기가 아니라 그저 느끼는 대로 아무 쪽지에나 끄적거리는 ‘시작 행동’ 말입니다. 온 방을 청소하는 계획을 세우기보다 그냥 책상 귀퉁이 하나 정리하는 행동, 그것으로 깨끗해진 책상 귀퉁이를 바라보고 당신을 칭찬해 보세요.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시작하고 변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러 작은 단계를 거치는 동안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원대한 계획, 완벽한 준비와 높은 기준에 허덕여 자책하거나 불쾌한 감정과 생각에 당신을 소진시키지 마세요. 그저 작은 행동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이끄는지 한번 경험해 보는 겁니다. 피오레는 ‘언스케줄(unschedule)’ 즉 전체 계획을 짜느라 전전긍긍하는 대신 30분 분량의 일부만 먼저 끝내보라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집중해서 30분을 하고 나면 하고 싶지 않은 내부의 관성이 깨지고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거지요. 30분의 작은 시작 행동, 말하자면 ‘내일은 논문 계획을 세워야지가 아니라 오늘 선배랑 논문에 대해 얘기를 나눠 볼까?’와 같은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시작 행동으로 배꽃님, 내 안의 관성을 깨고 새로운 경험으로 변화를 만들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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