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정오부터 1시까지 평화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377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사진은 참여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는 장면.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6일 정오부터 1시까지 평화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377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사진은 참여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는 장면.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도심을 뒤덮은 날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이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일본공사관 앞에 모였다.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일본공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1992년 1월8일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시작된 수요집회는 올해로 27년을 맞았다. 수요집회의 정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및 각 시민단체 주도하에 세계 최장기간 집회 기록을 매주 갱신하고 있다. 본지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6일, 본교 중앙동아리 ‘이화나비’의 전(前) 대표이자 현재 부원으로 활동 중인 엄성민(특교·17)씨와 함께 1377차 수요집회를 찾았다.

이날 평화로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 대학생 프로젝트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여성단체 ‘한국여성의전화’, 예수성심시녀회 회원 등 수십 명의 시민으로 가득 채워졌다. 시민들이 모여 있는 평화로 한쪽에는 목도리를 두른 소녀상이, 다른 한쪽에는 보라색 의자 위에 놓인, 지난 2일 별세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고(故) 곽예남(1925~2019)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있었다. 

집회 행사장 무대 앞에는 ‘3·8 여성의 날’이 적힌 팻말이 걸렸다. 엄 전(前) 대표는 “이번 시위가 3·8 세계 여성의 날 기간에 열려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정오가 되자 집회는 고(故) 곽예남 할머니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사회를 맡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한경희 사무총장은 “곽 할머니는 1944년 봄, 뒷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일본군에게 폭력적으로 연행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한 사무총장의 “힘든 생을 어렵게 버텼지만 일본 정부의 사죄 한마디 받지 못한 곽 할머니께 묵념하자”는 말에 시민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다음으로 정의연 윤미향(사회복지학 석사·07년졸) 대표의 경과보고 발표가 이어졌다. 윤 대표는 “지난 1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그 속에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여성들에 주목하라는 외침도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1일 워싱턴포스트(WP)에 고(故) 김복동(1926~2019)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는 광고를 실었다”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계 곳곳에 전하려 한다”고 세계 시민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윤 대표의 발표가 끝나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2분 내외의 짤막한 문화공연도 열렸다. 여성 해방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아 연주된 가야금 선율과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노래 ‘영웅’(2009)의 가사가 평화로 일대에 울려 퍼졌다.

이어 경기도청 방송국 구영슬 기자와 글로벌 이코노믹 박상호 기자의 자유 발언이 진행됐다. 구 기자는 얼마 전 나눔의 집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났던 기억을 회상하며 “할머니께서 ‘기자들과 수많은 인터뷰를 했는데도 일본 정부에게 아무런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일본의 반인륜적 만행은 기자로서 전 세계에 알려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기자는 “피해자 할머니들은 가난한 시골에서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일본 공장에서 조선 여성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따라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가면을 쓴 소녀상 지킴이 유재황씨는 정의연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그는 “고(故)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생전 조호쿠 조선학교에 후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이 사실을 몰랐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학교에 기부하는 작은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기부금을 전달받은 윤 대표는 “귀중한 성금을 받으니 괜히 눈물이 난다”고 전했다. 

‘청소년페미니즘 모임’ 운영위원장 양지혜씨는 자유 발언에서 “지난 1월29일 미투(#MeToo) 운동 1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서지현 검사가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이 아닌 그들을 손가락질하는 공동체 때문에 죽어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양씨는 “스쿨미투 1년은 피해자가 치유되는 시간이 아닌 가해 교사가 교단으로 복귀했던 1년”이라며 “1991년 8월14일 고(故)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최초로 피해 사실을 말한 것이 2018년의 미투 운동을 가능하게 한 것처럼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 관계자의 성명서 낭독 시간도 있었다. 성명서에는 111년 전 미국의 여성들이 인권과 참정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지만 “여성들의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전쟁과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연대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성명서 낭독 이후 시민들은 사회자 주도 아래 팻말에 적힌 구호를 크게 외쳤다. 보라색 바탕의 팻말에는 노란색 글씨로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 우리가 이루자!’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의 상징색인 보라색 풍선을 하늘 위로 높이 던졌다. 

집회가 끝나고 정의연 윤 대표를 찾아갔다. 지난 1월28일에는 여성인권운동가로 활동했던 고(故)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일에는 고(故) 곽예남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2019년 3월11일 현재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의 생존자 수는 22명이 됐다. 2015년 1월 기준 54명이었던 생존자 수가 절반 이상 줄어든 셈이다. 이에 윤 대표는 “우리의 운동은 죽은 사람과 함께 하는 운동”이라며 “(피해자 할머니들이)돌아가셔도 피해자는 그대로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운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화나비 엄 전(前) 대표 또한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두 별세해도 평화나비의 활동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뤄질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졸업 후에도 ’평화나비 RUN'과 같은 기부금 행사에 참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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