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 이화인에게 張三李四의 역사를 묻다
3·1절 100주년, 이화인에게 張三李四의 역사를 묻다
  • 박서영 기자, 임유나 기자, 장서윤 기자, 정다현 기자
  • 승인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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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1일,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린 날이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뜨겁게 시위했던 그날을 기념하며, 본지는 이화인들에게 3·1절을 주제로 인터뷰했다.

인터뷰에는 중앙동아리 한국근현대사연구회 민맥을 대표한 김동주(경제·17)씨와 이화역사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누리(커미·17)씨, 이다영(역교·16)씨, 독립운동 국가유공자 허만준의 후손 허승아(식품·15)씨가 참여했다.

 

- 나에게 3·1절이란

김동주: 3·1운동은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이 계획하고 주도한 사회운동이자 대규모의 민중이 참여한 독립운동이다. 이를 촉매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진행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3·1절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는 내가 역사와 현 사회를 성찰하게 해주는 뜻깊은 날이다.

이누리: 그 당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고 생각한다. 3·1운동은 일제의 통치방식을 바꾸고, 모든 사람이 일제에 대항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다영: 대한민국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허승아: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사실은 내게 인상적이었다. 그렇기에 3·1절이란 대한민국 주인으로서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 내가 만약 1919년 3월1일에 살았다면

김동주: 대규모 시위가 이뤄진 만큼, 처음에는 지레 겁을 먹고 소시민적 면모를 보였을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망설임 없이 독립운동에 임했던 열사들께 더욱 존경심을 느낀다.

이누리: 겁이 많아 적극적으로 독립투쟁을 하진 못했을 것 같다. 무리 속에 섞여 만세를 외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다영: 아마 전날부터 숨어서 태극기를 그렸을 것 같다. 앞에 나설 생각은 못 했을 것 같고 인파 속에 묻혀 3·1운동에 참여했을 것 같다.

허승아: 만세운동을 위해 필요한 사전 작업을 하는 조력자 역할을 했을 것 같다. 3·1운동 당일에는 탑골공원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지 않았을까.

 

- 최근 3·1운동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김동주: 아무래도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고, 최근 유관순 열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해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이누리: 최근 3·1운동처럼 과거 짓밟혔던 권리를 찾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다영: 끊이지 않는 건국절 논란 때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그 계기가 됐던 3·1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 민족이 주권 의식을 가지고 궐기했단 점이 촛불 시위 같은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3·1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된 것 같다. 3·1운동이 조선 민중의 민족의식 고취에 영향을 줬다는 점도 3·1운동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허승아: 올해가 3·1절 100주년이라 더 주목받는 것 같다.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곳에서 기념 행사와 기부 행사도 크게 하고, 유관순 열사 관련한 영화도 개봉해 좋은 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점들이 많은 국민들에게 그냥 휴일이 아닌 우리 역사에서 의미 있는 날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줬다고 생각한다.

 

- 3·1절 하면 떠오르는 인물 혹은 이미지

김동주: 유관순 열사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평양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김경희, 2·8 독립선언서를 몰래 국내로 가져왔던 김마리아 등이 떠오른다. 3·1운동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여성이 계획, 주도한 사회운동이었고 이를 계기로 수많은 여성광복단체가 결성됐기 때문인 것 같다.

이누리: 유관순 열사처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3·1운동의 경우 엘리트들보다 시민들이 중심이 됐는데, 그 시민들에게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3·1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학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다영: 유관순 열사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선배여서 고등학교 때 매번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천이나 종이에 그려진 옛 태극기도 떠오른다.

허승아: 친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옥중 생활을 하셨단 이야기를 매번 들었기 때문에, 얼마나 독립운동을 위해 힘쓰셨는지 알고 있다. 할아버지와 같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는 3·1절에는 항상 뭉클함과 존경심으로 경건한 마음이 생긴다.

 

- 그동안 3·1절에는 무엇을 했고, 이번 3·1절에는 무엇을 할 계획인지

김동주: 그동안 집에서 국기를 게양하는 것에 그쳤는데, 올해는 3·1절 100주년을 맞은 만큼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를 보며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려 한다.

이누리: 3·1절에는 TV에서 틀어주는 특선영화를 봤었다. 이화에서 공부하며 세상의 많은 여성의 업적이 가려져 있음을 알게 돼, 올해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라디오 드라마를 찾아볼 계획이다.

이다영: 3·1절 특선 역사 영화를 한 편씩 본 것 같다. 올해 3·1절에는 유관순 열사 이야기인 영화 ‘항거’를 보러 갈 예정이다.

허승아: 사실 지금까지 특별하게 3·1절을 보낸 기억이 없다.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집에서 태극기 달고, TV로 독립운동 관련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는 정도였다. 이번 3·1절은 친구와 함께 ‘항거’를 예매했다. 그간 독립운동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다룬 영화라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