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지향적’의 비극
‘미래지향적’의 비극
  • 김동건 편집부기자
  • 승인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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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의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

지난 주 2019 대수능을 치르며 떠오른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이 있다. 우리 학교에 들어온 대부분의 학생이 그랬을 듯이 당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공부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고, 그 엄청난 본성을 억누른 채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마법과도 같은 말이 하나 있었다. 대학에 가면 네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으리라.

고등학교에 몸담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의심치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수능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수능만 끝나면 내가 원하는 삶을 꾸릴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원하는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고작 시험 하나 끝났다고 능동적으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그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학창시절 내내 모범생이 학습해온 ‘미래지향적’인 성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래만을 생각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정작 그 미래가 현재가 됐을 때는 또 다른 미래를 생각하느라 충분히 즐기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이제 좀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건 최근 도쿄에 다녀와서다. 나는 열두 살 때부터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팬이었다. 그런 테일러 스위프트가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 콘서트를 열어 친구와 함께 콘서트 겸 여행 겸 다녀온 것이다. 가기 전 나는 ‘미래지향적’인 사람답게 또 고민에 빠져있었다. 수업을 네 개나 빠져야 하는데 내년 상반기에 인턴십에 지원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학점을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 이건 가야해”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손을 덜덜 떨며 비행기 표를 끊고 콘서트 티켓도 산 것이었다.

막상 어린 시절의 우상을 만나러 도쿄돔에 들어서니 학점이니, 인턴십이니 아무 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무대 위에 올라서는 순간부터 두 시간 가량의 공연을 끝낼 때까지 매 순간이 행복했다. 오랜만에 살아있는 기분을 느꼈다.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사라진 것 마냥 속이 뻥 뚫리기도 했다.

수많은 인파에 휩싸여 도쿄돔에서 나오며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한 선택을 해야겠다고. 왜냐하면 미래의 나보다는 현재의 내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미래의 나 역시 행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지향적’인 것은 비극이다. 사실 한국의 교육 및 사회체제 전반이 우리 대부분을 미래지향적으로 만들었긴 하다. 하지만 그 체제에 더 이상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것처럼 나 또한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싱스트리트’(2016)의 주인공 코너가 우리 모두 미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장면이 기억난다. 아니, 음악은 모르겠다만 적어도 인생을 대하는 우리 모두는 현재주의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