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행복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겠다

어느새 가을의 끝물이다. 시를 읽기 딱 좋은 어느 가을날, 박소란의 시 <다음에>를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로 시작하는 시는

“다음에,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로 이어진다.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라는 문장에서 먹먹했다. 나도 아주 잘 아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다음에’라는 말이 주는 허무함을 모두 한 번씩 겪어보았을 것이다. 시는 연애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나는 이 시를 읽고 우리가 항상 행복을 미루고 사는 것이 떠오르며 소위 '현타'가 왔다. 바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다음에라는 말이 얼마나 흔해졌는가- 하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나 역시 4학년이 되고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만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

중학교 때는 특목고에 들어가고자,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해 모두가 3년간 자신의 즐거움은 참아야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 때부터는 아무 말 안 하겠다 하셨던 부모님은, 대학생활 4년 내내 틈만 나면 "컴활은 따 두어야 한다." "이제 4학년인데 빨리 취업해야지"라는 말로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대학생활 동안 나는 누구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하고 알아서 잘 챙기는 편인데도 말이다.

그래 다음에, 다음에.

그다음이라는 말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특목고에 진학했고, 이화에 왔다. 성적도 괜찮고, 활동도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은 취업 준비를 하는 4학년이 되었다.

그래 아무렴 좋아. 다음이라는 말을 믿고 기다려서 무언가 나중에 정말 보상이 있다면 언제든 기다릴 수 있어. 그런데 정말 열심히 살며 기다리면 갑자기 어느 날 행복이 찾아올까? 행복하지 못한 채 보내는 현재의 나날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인데, 지금의 행복을 희생하면 나중에 정말 행복이 배로 돌아올지 의문이다. 물론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이 있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든 것도 알지만, 취업 걱정에 인생 걱정에 자꾸만 세상에 지친다. 그래서 나중에, 정말 행복이 찾아왔을 때 내가 그를 반겨주지 못할 만큼 지쳐있으면 어떡하지?

누군가 결국 행복이란 없고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 행복은 큰 것이 아니라 작은 데서 찾는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행복한 일을 미루어서, 그 작은 것도 찾는 법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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