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과 참혹한 전쟁으로 얼룩졌던 현대사를 회복과 번영의 길로 전환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자유무역체제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규범에 기반한 자유무역체제의 설계자이자 최대주주인 미국의 변심, 자유무역체제에 편입되면서 세계최고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위선에 자유무역체제는 심각하게 파괴되고 훼손돼 회복불능의 상태가 돼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쏘아올린 대중국 관세폭탄에 시진핑 주석은 보복관세폭탄으로 맞서고 있다. 디지털혁명이란 세계사적인 변화의 변곡점에서 기술굴기를 시도하고 있는 중국은 “서세동점”의 격량 속에 겪어야 했던 ‘치욕의 백년’을 보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자신에 가득 차 있다. 자신을 추월하려는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지 않으면 미국의 패권은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위기감에 미국은 사로잡혀있다. 때문에 미중 무역전쟁은 무역수지가 아닌 중국식 체제가 추진하는 기술굴기가 핵심이며, 그 바탕에는 미중 패권경쟁이 자리잡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세계 무역 질서가 질서에서 혼돈으로, 규범에서 힘의 논리로, 자유무역에서 관리무역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기존의 규범과 제도를 무시하고 힘으로 상대국을 몰아붙이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로 이미 들어섰다. 뉴노멀의 태동은 중국을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미국을 안보 동맹이자 최대 시장으로 둔 한국의 생존 방식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전환기적 사건이다. 미국에서는 대중 영합적인 보호주의 강풍이 불고, 중국에서는 ‘중화 민족주의’ 역풍이 거세다. 보호주의와 민족주의 강풍이 언제쯤 사그라지지 쉽게 가늠할 수조차 없다. 혹한의 추위 속으로 들어간 한국경제를 그런대로 버티게 해 준 통상마저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뉴노멀은 무역확대를 통한 중국의 성장이 결국에는 중국의 정치적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는 미국의 믿음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미중간의 무역 격돌, 신냉전의 시작은 한국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한국에게 중국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통상관계에 불협화음이 있어도 동맹은 튼튼하다는 한·미 관계는 이제 과거 기억이 되었다. 정치체제는 다르지만 경제적으로 의기투합했던 한·중 무역관계는 중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관계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하려는 경쟁 관계로 변화했다. 한국은 어느 선진국 보다 먼저 중국에게 WTO 협정에서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해 줬다. 경제규모 1000억 달러를 넘는 국가 중에서는 최초의 결정이었다. 중국이 지속적인 개혁과 개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기대가 그런 통 큰 결정을 가능하게 했지만, 중국을 그런 기대를 저버렸다. 디지털혁명의 세계사적인 물결을 타고 중국은 한국을 넘어서려 한다.

뉴노멀 시대 한국의 생존전략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미국과 중국 어느 편에도 서지 말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중국시장은 선택이 아니라 상수라는 주장, 이 두 가지는 비현실적이거나 비전략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의 궤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최근 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무역보복은 중국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상황에서 중립론은 가당치도 않다.

중국식 기술굴기의 피해를 보면서도 중국은 여전히 “약속의 땅”이라는 주장은 너무나 안이하다. 중국과의 경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과 같다. 공정해야 할 심판은 외국선수들에게 편파적으로 불리하게 판정하고, 수시로 경기장에 뛰어 들어와 자국선수들에게 유리하게 공을 몰아준다. 상황이 이럴진데, 경쟁력만 있으면 문제 없다는 기술 만능주의는 본질을 호도한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중립론, 중국을 시장으로만 간주하는 어설픈 기회론으론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뉴 노멀시대의 속성을 꿰뚫어 보는 치열한 고민과 성찰에 기반한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현실적인 생존전략만이 한국을 미래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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