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아침, 1대1 아동결연 중인 필리핀 친구가 사는 마을이 자립 가능하게 되어 후원 운영이 종료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자립 가능하게 되어 후원 종료라니 참 기쁘면서도 뭔가 허탈했다. 몇 년간 정기후원을 하면서 무뎌진 탓일까.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후원이 이 메시지 하나로 종료되다니. 허무했다.

그동안 매월 초가 되면 나의 통장에서 3만원이 빠져나가고 뜨던 알림메세지. 그 알림이 뜨면 나의 통장잔고를 떠올리고 살짝 맘이 쓰렸다가, 이내 익숙하게 알림을 밀어 없애곤 하였다. ‘이번 달도 후원금이 잘 들어갔구나, 잘 컸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친구는 1년에 한두 번씩 내게 손수 꾸민 엽서를 보내왔다. 사실 내가 그 친구에게 뭘 해준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미루고 미루다가 자필편지 한번 제대로 못 보내고 간편한 온라인 편지 시스템을 이용해 보냈던 게 다인데. 그런 내가 이 친구의 정성을 받을 자격이 되는가 싶어 친구의 편지를 받아들 때면 괴로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언제 헤어질지 몰랐기에 더 나태했다. 그저 매월 통장의 알림으로 한 번씩 떠올렸던 필리핀의 내 친구. 3만원은 정말 이상한 돈이다. 작은 것 같기도 한데 또 학생의 신분으로는 크게 느껴질 때도 있는 애매한 액수. 1만원도 5만원도 아닌 3만원. 3만원은 그동안 내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고 나는 이 3만원으로 세상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수업비가 아니었을까.

특히 3만원이 빠져나갈 때마다 내가 하는 후원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많은 봉사활동을 일상처럼 해왔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나누는 게 좋았고, 봉사하면서 늘 겸손하게 사는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돈으로 하는 후원이 봉사활동의 의미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그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봉사는 누구든지 할 수 있지만 정말 내 돈을 나누는 기부는 어쩌면 더 어려운 것이라고. 배가 고픈데 와서 청소를 해주는 것보다 영양 있는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이다. 현실적으로 돈이 있어야 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세상에서 돈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저생활수준(subsistence level)’이라고 말하는 만큼의 경제력이 있어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도 무엇을 사려면 이천원이라도 주머니에 있어야 하니까. 후원하며 오히려 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로써 여러 가지를 느끼고 배웠다.

알드렉 툴리아오. 잊지 못할 이름. 2003년 9월생. 네 사진을 처음 받았을 때 앵그리버드 티를 입고 환하게 웃던 어린아이였는데 마지막 성장보고서에는 어엿한 중학생이 되어 서 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도 내 성장보고서를 만들어 사진과 함께 자주 보내줄걸 그랬나 보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깨닫는 바보 같은 인간. 친구야, 곧 네 생일이구나, 생일 축하한다.

마지막이니 더 쑥스러운 말을 뻔뻔하게 적을 수 있겠다. 어제 네게 긴 편지를 써서 보냈어. 너는 나의 사진을 처음 볼 텐데 너도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친구야 이제 안녕.

마지막 편지를 부치며 나는 이 친구와 언젠가 우연히 마주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풍성한 가을과 같이 그 친구가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유난히 달이 빛나는 밤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