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 소담 배꽃 수다방

고민이 많은 이화인들을 위해 편하게 마음과 심리적인 지식을 나누는 배꽃수다방이 2학기에 다시 오픈됐어요. 여러분들이 주신 사연들을 읽다보니 마음 한 구석이 일렁이네요. 우리 함께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멈추어 내 마음을 살피는 시간 가져 보면 어떨까요? 

 

한 배꽃님이 보내주신 사연

안녕하세요. 제 상태에 대한 사연 보냅니다. 요즘 스스로도 너무 날카롭단 생각이 들어요. 이전에는 웃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들이 거슬리고 더 화가 납니다. 주변에서 학점이나 장학금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 날카로울 수는 있다고 생각 중인데 괜찮은 성적이나 장학금을 받아도 이 상태가 누그러지지 않아요. 이제는 화가 날 일이 생기면 계속 그 생각이 나서 잠을 잘 잘 수가 없을 때도 생깁니다. 분에 못 이겨서 씩씩대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마치 감정 쓰레기통인 것처럼 제 기분을 주체 없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가장 힘든 건 이러고 나서 행동이 과했다는 걸 스스로 인지한다는 거예요. 안 해야지 안 해야지 해도 그게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사연을 주신 배꽃님, 화날 일이 아닌 일에도 화가 올라오고 때때로 화나는 생각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니 참 못 견딜 노릇이지요. 게다가 분을 삭이지 못해 어떤 행동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 행동을 한 자신에게 다시 후회, 분노가 부메랑처럼 찾아오니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얼마나 클지 저도 배꽃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화’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간이 자주 경험하는 보편적인 정서이지요. 그리고 ‘화’를 내었다가 후회하는 일들도 우리에게 낯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류에게 ‘화’를 참는 일도 적절하게 내는 일도 늘 항상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지요. ‘화’라는 놈을 다루기가 정말 어렵답니다! 일찍이 1900년 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분노의 원인보다는 결과가 훨씬 더 고통스럽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화’는 인간이 경험할 밖에 없는 중요한 감정이자 잘 다루어야 하는 감정입니다.

화가 일어나면 우리는 화나는 사건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신체는 경직되고 뇌는 더 각성하면서 감정은 점점 더 증폭되어 참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객관적이고 조절 가능한 수준을 넘어 임계치에 달하게 되지요. 때때로 작은 일인데도 내 통제를 벗어나거나 내 노력을 뒤엎을 때, 무례한 상대방의 태도에 상처를 입었을 때,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내 기대치와 다를 때, 예상 밖의 손해나 피해를 보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당연히 화날 수 있지요.  물론 큰 공격을 받거나 억측에 시달린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나 많은 경우 실제 일어난 일보다 상황을 더 악화된 걸로 받아들이거나 큰일로 여기는 지각, 인지의 왜곡도 일어나지요. 그리고 이런 분노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 상대를 혹은 상황을 생각으로 ‘비난하기’를 시작합니다. 인지치료학자 벡(Beck)은 이러한 상태를 ‘증오 감옥의 죄수(prisoners of hates)’라고 부릅니다. 분노 사건을 경험한 후 분노 감정에 빠져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최선의 선택을 하기보다 최악의 상황이나 행동을 선택하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지요. 특히 이미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태라면 이런 분노상태는 활성화되기 쉽겠지요.

엘리스(Ellis)는 분노를 다루면서 중요한 것은 원인보다는 이를 수용하고 적응하고 조절하기 위한 능력과 이에 대한 철학적 관점이라고 그의 이론에서 이야기합니다. 그에 따르면 정말 화날 만한 사건들(예를 들면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파산, 사기, 배신)이라 할지라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힘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는 원인보다 더 사람을 무력하고 결과를 나쁘게 하는 것은 ‘사건이 예상대로 되어 가지 않을 거라는 불안과 내가 삶의 혐오적인 촉발사건을 인내할 만큼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믿음’이고 이 신념에 사로잡힐 때 ‘파국화’가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제가 경험한 ‘화’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해드리고 싶네요. 재작년쯤이었을까요? 중요한 회의가 예정된 아침 출근길 막히는 시내를 통과하자니 너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북악산길을 따라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 한 대도 없는 조용한 산길이라 조금만 서두르면 시간을 잘 맞출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요. 그런데 난데없이 사잇길에서 올라온 차량 하나가 20km도 안 되는 속도로 앞을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길은 외길이니 벗어날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하다 못해 짜증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운전을 못 하면서 아침 출근 시간에 차를 가져온 것이냐(상대 비난하기)’는 생각부터 ‘도대체 언제까지 저 속도로 갈 것이지?(비아냥거리기)’, ‘이러다 늦으면 정말(끔직하다는 사고)’, ‘하필 오늘 같은 날 이런 차가 내 앞에 있다니! 내가 서둘렀어야지 누굴 원망해(자기 비난하기)’, 점입가경으로 미끄럼 방지턱만 나오면 거의 서다시피 하는 이 앞차를 보면서 ‘경적을 울리고 확 추월할까(충동적 행동 계획)’하는 생각에 맘이 급해지더니 시간이 경과될수록 커지는 화를 누르다 폭발지경에 다다를 때쯤 ‘오늘 하루 망쳤구나, 아침부터 이렇게 피곤하고 화가 나게 되었으니 일이 잘되겠어?(파국화)’라는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지요. 이때 저는 화를 누르는 압박감에 팔과 온몸에 힘이 들어가 딱딱하게 굳어지고 온몸이 화끈거리는 열감(신체감각)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의 신체 감각을 인식하자 머리를 스치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화만 내다가는 오히려 스트레스만 듬뿍 받고 예정된 회의도 망치겠구나(현실 지각). 회의는 조금 늦더라도 이 시간에 화나는 생각들로 나를 괴롭히지는 말자(대안적 생각)’,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많이 늦는 건 아니니 괜찮아(상황 수용)’, 깊은숨을 고르고(신체조절) 화를 좀 내려놓으려 하자, 다시 뇌가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저 차 안에는 치질 환자라도 있을지 모르지…. 저렇게 턱마다 서는 걸 보니 아주 중증 환자가 고통을 참으며 가는 건 아닐까?’ 생각의 꼬리는 이런 유머 있는 상상까지 가게 되었고 저는 그런 우스운 상상에 미소가 생기는 여유까지 갖게 되었답니다. ‘심각한 중증 환자가 차 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뒤에서 너무 바짝 다가가 상대 차를 긴장시키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도 들더군요. 그 길의 끝에서 상상 속의 치질 환자 차량은 사라지고 저는 무사히 학교에 도달했지요. 따져보니 단지 5분 늦었을 뿐이더군요. 현실적으로 5분 늦는 것 때문에 저는 마음속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간 셈이었지요.

저는 이 사건을 통해 감정이 얼마나 생각에 따라 쉽게 통제되고 변할 수 있는지를 경험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치질 환자를 떠올려 분노를 잠재웠던 저의 창의적인 뇌 활동에도 감탄도 했고요. 상황을 수용하는 생각을 선택하자 수용적인 뇌 회로로 확장해 저를 평온함에 이르게 하는 ‘사고 전환 과정’도 경험했지요. 거기에다 저는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불확실성의 세계를 경험하고 수용’하게 되는 철학적 확장 경험까지도…. 그리고 약간의 미안함은 있었지만, 회의를 잘 마치면서 차선이지만 그래도 좋은 결말에 다다른 저의 힘(사고의 유연성)도 경험하게 되었지요.

삶은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거나 훌륭하다 해도 살다 보면 스트레스, 갈등, 분노 자극, 혐오 자극에 시달리게 됩니다. 불확실성의 세계에 사는 것이지요. 또한 나도 타인들도 완전하지 않고 실수 많은 인간이기에 불협화음과 예측 불가능성을 만들어 내지요. 결국 이런 화나는 상황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건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실수 많은 불완전한 존재인 나와 타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실재하는 세계이지요. 완벽하고 실수 없고 갈등 없고 예측대로 진행되는 세상은 우리의 바람과 기대가 만든 환상일 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항상 화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기대보다 못하고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겪을 때 우리는 삶의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삶의 마이너스가 일어나는 순간 너무 본전 생각만 하다가는 ‘감정의 감옥’에 빠질 수 있다는 거지요. 세상은 불확실하고 우리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 우리는 살짝 에누리 셈법을 해야 하는 거지요. 엘리스(Ellis)가 말한 대로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현실 수용, 타인 수용, 자기 수용의 세계에 한발씩 나아가게 될 겁니다.

혹시 제 이야기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약적이라 느껴져 불편하셨나요? 혹시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넘쳐 과했다고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기를 바랍니다. 설명이 부족했다면 이 가을에 자신을 분석하면서 읽어도 좋을 카시노브(Kassinove)의 저서 ‘분노 관리하기’를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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