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시선으로 본 서양 동화, 한복의 아름다움을 캐릭터에 입히다
색다른 시선으로 본 서양 동화, 한복의 아름다움을 캐릭터에 입히다
  • 한채영 기자
  • 승인 2018.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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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한복의 날 기념, 우나영 작가를 만나다

작년 3월,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1992)의 한국화 포스터가 화제가 됐다. 포스터 속 주인공 ‘벨’은 노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야수’는 푸른색 곤룡포를 점잖게 걸친 모습이었다. 이외에도 같은 해 공개된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2017)와 ‘토르: 라그나로크’(2017)의 한국화 특별 포스터 역시 서양 캐릭터에 한복과 한국 풍속을 아름답게 녹여내 호응을 받았다.

이 작품들은 모두 ‘흑요석’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우나영(동양화·02년졸) 작가의 그림이다. 그는 아름다운 한복 일러스트를 그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1일 한복의 날을 앞두고 우 작가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필명 ‘흑요석’으로 활동중인 우나영 작가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필명 ‘흑요석’으로 활동중인 우나영 작가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인터뷰 당일 우 작가는 고운 보라색 한복을 입은채로 작업실 문을 열어줬다. 그는 방금까지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작업실 책상 위에는 다양한 한복 서적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고, 곳곳에 그의 일러스트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사실 처음 일러스트 작업을 시작했을 때 그는 서양 동화에 한복을 입힐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은 전래동화를 소재로 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전래동화가 한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보는 이의 재미가 덜할 것이라고 생각해 고안한 것이 서양동화 시리즈였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한복을 그리는 것일까. 우 작가는 망설임 없이 ‘예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우리 옷인데 사실 우리가 잘 모르던 옷이잖아요. 예쁘지 않다는 인식도 만연했고요. 일제 강점기 이후로 외래 문물이 들어오면서 혼종이 된, 너무 안 예쁜 한복을 많이 본 거죠. 펑퍼짐하고 촌스러운 무늬나, 촌스럽다고들 하는 쨍한 색감의 한복 같은 걸요. 하지만 사실 한복은 무척 아름다운 옷이었어요.”

우 작가는 대중이 알고 있는 한복의 모습은 매우 단편적인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조선 시대 초기 한복은 품이 넉넉하면서도 천을 많이 써서 18~19세기 서양 치마 못지않게 아름다운 형태였다. 당시 여인들은 여러 겹의 잘잘 끌리는 치마를 입고 멋을 부렸다. 조선 시대 후반에는 안에 속옷을 잔뜩 입어 한껏 부풀린 항아리 모양의 한복이 유행했다. 현대에 들어서 소위 ‘기생 옷’이라고 잘못 알려진 이런 형태는 사실 양반집 사대부 아녀자들조차 즐겨 입었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옷이었다. 

형태뿐만이 아니다. 조선 시대의 한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사용됐던 천의 색 또한 아름다웠다. 조선 시대에는 천연염색으로 색채의 농도를 조절해 천을 물들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쪽 염색을 연하게 들여 만든 옥색은 궁궐에서도 많이 사용한 색이었다. 우 작가는 조선 시대 한복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한 색 외에도 옥색이나 연홍색의 우아한 색 역시 많이 사용됐을 거라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공부하고 작품에 담아 전달하는 것은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중 하나다. 우 작가는 그의 그림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한복의 아름다움을 깨닫길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한복을 입은 캐릭터를 그리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어디일까. 바로 깃과 고름이다.

“한복을 현대적으로 표현해야 할 때도 깃과 고름은 가능하면 그리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몸의 중심에 있는 부분이잖아요. 특히 저는 고름을 크고 길게 그리는 걸 좋아해서 자주 그려 넣어요.”

깃이나 고름 외에도 소매가 둥그렇게 떨어지는 붕어 배래 역시 자주 그린다는 우 작가는, 고증도 신경 쓰지만 한복만의 예쁜 부분을 강조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복을 그리는 건 사랑을 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너무 궁금하고, 계속 그 사람만 생각나고 그렇잖아요. 저는 한복에 대해서 그렇게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언제나 그런 상태죠.” 

우나영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1)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우나영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1)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한복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그림에 잘 녹아났기에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2014년 해외 사이트에 한복을 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비롯한 ‘서양 동화’ 시리즈가 소개된 것을 시작으로 그의 그림은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인지도가 올라가고 작업량이 늘어나면서 힘든 순간도 많지만, 그때마다 우 작가는 본인의 그림이 다른 이에게 행복과 재미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되새긴다.

“한 번은 해외에서 온 메일을 받을 적이 있어요. 메일의 주인공은 동양계 미국 분이셨던 것 같은데, 제 그림을 보고 눈물이 나셔서 막 우셨대요. 어렸을 때 공주 놀이를 하다가 어느 순간 ‘나는 동양인이니까 공주 놀이를 할 수 없겠구나’하고 그만뒀던 게 기억나서요. 당시 임신 중이라고 했는데, 훗날 아이에게 제 그림을 보여주면서 너는 더 상상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예쁘고 재밌게 그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하지만 그 사연을 받은 이후로 한복을 입은 캐릭터를 그린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죠.”   

인터뷰 말미에서 우 작가는 당분간 외주 작업보다는 새로운 작업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창작 플랫폼 그라폴리오(grafolio.com)에 연재 중이던 ‘흑요석이 그리는 한복 이야기’는 책으로 엮여 2019년 1월에 출판될 예정이고, 이외에도 두 건의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사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지만 우선 한복에 대한 책을 계속 펴낼 거예요. 한복 그리는 법을 담은 책도 구상 중이고요. 제가 아는 바로 현재는 한복을 어떻게 그리는지 알려주는 작법서가 없어요. 그래서 제 작법서가 한복을 소재로 그리는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도움이 돼 더 많은 이들이 한복을 소재로 예쁜 그림을 그려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