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은 572돌 한글날이었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매년 한글날이 되면 한글의 우수성과 위대함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널리 알려졌듯이, 한글은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창작자와 제작 원리를 알고 있는 가장 과학적인 문자다. 특히 이번 한글날에는 광화문에서 열린 경축식에서 2005년에 시작한 남북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 작업을 재개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던 만큼 앞으로의 한글 연구가 더욱 기대된다.

한글날 당일 전국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여러 포털 사이트는 이름을 한글로 바꿨다. TV 프로그램과 신문에서는 저마다 한글 사용 실태 문제를 꼬집었다. 요즘 사람들이 맞춤법을 무시하고, 불필요한 외래어와 외국어를 남발하며, 신조어를 만들어 한글을 파괴한다는 요지였다. 언론이 앞다퉈 보도하는 한글 사용 실태 문제를 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론에서는 얼마나 바른말과 글을 사용하고 있을까?

올해 5월 한글사용성평가위원회가 지상파와 종합편성 방송 7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의 언어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외국문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국어기본법 위반은 물론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나 외래어, 일본어 투까지 남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로 방송사 프로그램의 부적절한 언어 사용이 도를 넘어 우리말을 죽이는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외국어는 번역하거나 순화해서 써야 하지만 대부분 보도프로그램은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쉬운 대체어가 있음에도 어려운 한자어를 남발하거나, ‘~적’, ‘~에서의’, ‘~의’와 같은 일본어 투와 영어 투 문장이 빈번히 등장하기도 한다. 평소 자주 쓰는 표현이라 하더라도, 이런 표현이 일본 식민지 교육과 영어 교육 중시의 영향인 점을 고려하면 방송언어에서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예능프로그램의 언어 사용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예능에서 자막은 출연자의 대사나 현장 상황 표현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런데 이 자막을 자세히 살펴보면 통신언어와 은어, 비속한 표현, 어문 규정에 어긋나는 비문법적 표현, 불필요한 외국어, 부적절하거나 부정확한 표현, 띄어쓰기 오류, 의도적인 표기 오류 등 셀 수 없이 많은 한글 오남용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6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상파 3사 심야 예능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자막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위에 언급한 오남용 실태가 모두 나타났다.

단순 한글 오남용 문제 외에도, 언론의 무신경한 언어 사용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범죄사건 보도에서 가해자 대신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 제목을 짓거나 눈길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단어 사용은 여론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지난 7월 ‘일베 박카스남’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처음에 ‘박카스녀’로 시작되었으나 많은 사람의 비판과 항의로, 그리고 주요 언론인 JTBC가 ‘일베 박카스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타 언론들도 따라 쓰기 시작했고 이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언어에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언어로 사고하고 사고를 언어화하기에 언어는 우리 생각을 지배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되는 방송언어는 더욱 중요하다. 큰 영향력과 파급력을 가진 방송언어가 공공언어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뒤돌아보며 개선돼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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