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법학 연구소, 법 안에 성평등을 품다
젠더법학 연구소, 법 안에 성평등을 품다
  • 한채영 기자
  • 승인 2018.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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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28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조치)가 개정됐다.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역시 2018년 3월13일 개정됐다. 개정 이후 ‘죽어있던’ 두 법안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을 위한 ‘살아있는’ 법이 됐다.

이 작지만 큰 변화는 모두 한 곳에서 비롯됐다. 대한민국 젠더 관련 법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곳, 법학관 404호에 위치한 젠더법학 연구소를 방문했다. 

 

젠더법학연구소 김유니스(Eunice) 소장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젠더법학 연구소 김유니스(Kim Eunice) 소장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이전의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2항을 보면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만 명시돼 있었어요. 여기서 ‘불리한 조치’라는 게 뭐예요. 모호하잖아요. 사실 법안에서 말하고 싶었던 ‘불리한 조치’라는 것은 성희롱 2차 가해를 하면 안 된다는 거였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2차 가해가 뭔지도 몰라서 구체적인 해석과 예시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도요. 법안의 허술함 때문에 결론적으로 성희롱 2차 피해가 계속 발생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조항에 대한 개정을 제안했고, 결국 2017년 실제로 반영됐습니다.”

젠더법학 연구소 소속 장명선 교수는 연구소에서 이처럼 연구소가 실제 법안을 개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일은 한두 번이 아니라고 웃으며 설명했다. 매년 정부 부처 용역연구사업에 참여해 젠더관련 법 또는 정책의 개선사항을 제시하고 실제 개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연구소 벽 한 면을 채우고 있는 커다란 책장, 그곳에 꽂힌 무수한 자료집 및 보고서는 모두 실제 국내 법안에 반영된 연구소 성과의 축적이다.  

그렇다면 연구소에서 연구를 발전시키고 실제 법안 개정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칠까. 연구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오랫동안 소속 연구원 모두가 매달릴 연구할 주제를 선정하는 일이다.

“연구비가 따로 나오지는 않기에 정부 부처에서 나오는 연구용역을 받곤 해요. 주제를 고를 때는 최근에 화제가 된 문제 위주로 고르고 계획서 및 제안서를 제출하죠. 사실 주제를 선정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오랫동안 깊이 들여다봐야 할 일을 고르는 거니까요.”

제안서가 선정되고 연구주제가 정해지면 이후 관련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문헌연구에 들어간다. 이후 진행된 연구에 대해 자문을 받으면 비로소 보고서를 통해 정책을 제안할 수 있게 된다. 앞서 설명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 모든 일은 대부분 연구소 전원인 5명의 구성원으로 진행된다.

연구 활동 외에도 젠더법학 연구소 내에서는 총 5가지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술지 「이화젠더법학」의 정기발행, 젠더관련 단행본 출간, 젠더 이슈 학술대회 개최, 젠더 바로알기 프로그램 운영, 상담센터 운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장 교수는 4월11일 개최됐다는 ‘#Me Too 분노를 넘어 실천으로!’ 세미나 자료집을 책장에서 꺼내 보여주며 설명했다.

젠더법학연구소에서 출간한 학술지 「이화젠더법학」과 관련 단행본들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젠더법학 연구소에서 출간한 학술지 「이화젠더법학」과 관련 단행본들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연구소에서는 연구 활동 이외에도 현재 사회의 커다란 관심사인 젠더폭력, 즉 미투운동, 데이트폭력, 사이버성폭력, 비동의 간음죄 등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 젠더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여러 전문가와 학생을 한 자리에 모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연구소는 당시 가장 이슈화된 젠더 문제를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그렇다면 장 교수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가장 중요해질 젠더 주제는 무엇일까. 바로 ‘낙태권’이다.

“노동 시장에 여성이 참여하고 젠더폭력 고발이 불거졌던 것이 사회와 여성을 일깨우는 두 번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뒤이을 도화선은 낙태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법 관련 결정을 내린 이후에는 위헌이라면 위헌이라는 이유로, 합헌이라면 또 그런 경우대로 문제가 될 거예요. 낙태권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전개해나갈지를 논의해야 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관련 세미나를 열어 대책을 마련해야겠죠.”

젠더법학 연구소장인 김 유니스(Kim Eunice) 교수는 낙태법 외에도 사회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는 젠더 문제가 여전히 산재해 있기 때문에 젠더법학 연구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법은 사회의 변화, 내지는 정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루어내는 방법으로 법처럼 확실하고, 효과적이고, 피해자를 구제해줄 수도 있는 방법이 없죠. 그런 의미에서 젠더법학 연구소는 무척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법학은 남성의 시각으로 쓰였다면 지금의 법 여성학은 여성의 시각으로서 문제를 들어보고 성 평등을 추구하는 거니까요. 그렇기에 앞으로도 젠더법학 연구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