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역량 강화 효과 미비, 오히려 교수·학생 부담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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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본교는 글로벌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2007학년도 입학생부터 영어강의를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2014학년도 이후 입학생부터는 영어강의를 18학점 이상 수강해야 한다. 그런데 영어강의 18학점 필수 이수 시스템이 정착된 지 5년째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영어강의로 필수 학점을 채우기가 힘들거나, 교수의 영어 구사력에 대한 고려 없이 의무적으로 영어강의를 개설하게 하는 데에 따른 문제점 등이 대표적이다.

2018학년도 2학기를 기준으로 본교에 개설된 영어강의 분반은 총 개설 분반 2463개 중 모두 505개였다. 그 가운데 전공과목 분반은 375개, 교양과목 분반은 130개를 차지했다. 2018학년도를 통틀어 보면 총 800개의 영어 수업 분반이 개설됐는데, 이는 2014학년도에 699개의 분반이 개설된 것과 비교해 101개가 늘어난 수치다.

 

△영어강의 개설 안 되는 학과, 필수 이수 학점 채우기 힘들어…

학교 측이 영어강의를 점차 확대해나가는 것과는 달리, 영어강의 필수 이수 학점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졸업을 앞둔 김사라(영디·15)씨의 전공에서는 영어 전공과목이 전혀 개설되지 않아서 전공 수업을 들으며 영어강의 이수 학점을 채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김씨는 이미 졸업에 필요한 교양을 전부 이수했지만 채워야 할 영어강의 학점이 남아있어 또 다른 교양을 들어야 한다. 그는 “실제로 이번에 시간표를 짤 때, 동기가 영어로 진행되는 교양은 무엇이 있는지 나에게 묻기도 했다”며 “영어강의라는 명목이 아니면 굳이 듣지 않아도 되는 교양을 듣느라 내가 배우고 싶은 전공에 쏟고자 했던 시간과 수강학점 등 많은 기회비용을 허비하는 느낌이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교무처 수업지원팀은 2018학년도에 영어강의 개설비율이 가장 높았던 전공이 차례대로 국제학부, 휴먼기계바이오공학부, 화학신소재공학,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전공, 영어영문학부라고 전했다.

반면 국어국문학과나 기독교학과, 사이버보안학과, 시각디자인과, 역사교육과, 물리교육과 등 1학기와 2학기를 통틀어 영어강의가 단 한 개도 없는 학과는 18개이다. 이 전공의 학생들은 교양과목이나 타전공과목으로 영어강의 학점을 채워야 한다.

임수현(중문·17)씨는 “보통 3, 4학년쯤에는 다들 인턴을 준비하는데, 우리 과 학생들은 그 시기에 영어강의 학점을 채우기 위해 계절학기나 추가학기를 다녀야 하는 등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며 “학생들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수업을 억지로 듣게 하는 것은 바뀌어야 하는 제도”라고 의견을 밝혔다. 정예린(산디·16)씨 역시 “전공과목에서 영어강의가 개설되지 않아 교양과목으로 학점을 채워야 해서, 듣고 싶은 교양을 선택하기보다 그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지 여부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주전공에는 영어강의가 없더라도 부·복수전공을 통해 영어강의 이수 학점을 채우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교무처 학적팀에 따르면, 현재 부·복수전공을 하는 학생의 비율은 26%이다. 전체 학생의 약 4분의1만이 부·복수전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수치는 2018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으로 인해 전체 재학생의 수가 줄고, 아직 부·복수전공 신규 신청을 받지 않은 상태다.

 

△글로벌 역량강화 목적에 부합하는지 의문

단순히 영어로 강의를 진행한다고 해서 글로벌 역량 강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는 학생들도 있다. 한지윤(융합콘텐츠·16)씨는 “수업 내용이나 형식 자체는 그대로인 한국식 강의를 영어로 옮겨놓은 것뿐이라 본래의 목적을 명목상으로만 추구하는 느낌”이라며 불만을 표했다. 남서현(융합콘텐츠·16)씨 역시 “영어강의의 성적 비율이 한국어강의보다 후하다는 점 외에는 장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영어강의 이수가 글로벌 역량 강화와 무관하다는 것은 해외대학원 진학자 수로 확인할 수 있다. 대학알리미 홈페이지(academyinfo.go.kr)에 따르면 본교출신 학부생 중 2016년 해외대학원 진학자는 31명, 2017년에는 29명, 2018년에는 37명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다.

교무처 수업지원팀에 따르면 영어강의 의무가 있는 교원들은 임용 후 일정 기간 동안 반드시 영어강의를 개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영어로 유창하게 수업하기 쉽지 않은 교원들도 영어강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한씨는 “교수님이 영어에 능숙하지 않음에도 억지로 영어강의를 진행하게 하는 것은 학생과 교수님 모두에게 역효과”라고 의견을 밝혔다.

스크랜튼대 ㄱ교수는 “여태 의무적으로 영어강의를 개설해왔는데, 영어로 수업을 하면 내용 전달이 수월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며 “글로벌 역량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영어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수업 내내 한국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양정안(영디·16)씨는 “1학년 때 들었던 영어강의에서 교수님이 한국어로만 수업을 하셨는데, 강의평에는 영어를 사용했다고 적어주기를 부탁하셨다”며 “당시 암묵적으로 동의를 강요하는 분위기라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교무처 수업지원팀에서는 “현재 영어강의 필수 이수에 대한 제도 변경은 예정된 바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편, 영어강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양씨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국외교환을 준비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며 “영어강의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무처 수업지원팀 역시 “영어강의의 강의평가 점수를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유지 또는 상승추세에 있다”며 영어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증가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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