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보금자리, 이화가 피어난 신촌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청년들의 보금자리, 이화가 피어난 신촌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이재윤 기자
  • 승인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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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서울역사박물관에서 21일까지 개최
신촌의 역사를 담은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전시회 입구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신촌의 역사를 담은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전시회 입구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신촌(新村)’은 ‘새로운 땅’이라는 뜻이다. 경의선이 개통되고 대학들이 이전한 시점부터 신촌은 ‘새로운 문물의 통로’로, 새로운 것이 유입되고 확산되는 땅이었다.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신촌은 최첨단의 유행이 가장 먼저 유입되는 곳이었다.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만의 역사가 있다. 역사와 함께한 사람들은 그곳을 추억으로 간직한다. 학생들 각자의 작은 추억을 만들어가는 신촌의 역사와 그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을 찾았다.

해당 전시는 21일(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B에서 진행된다. 본 전시는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촌 지역의 변화와 지리적, 문화적 특성을 고찰한다. 더불어 신촌을 통해 유입됐거나 신촌에서 시작된 새로운 문화를 탐색한다. 또한 청년문화의 전성기였던 1970~90년대를 중심으로 신촌의 면모를 살펴본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신촌의 모습을 담은 커다란 영상이 눈에 들어온다. 옛 신촌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 위로 현재 모습이 하나, 둘 색을 지닌 채 나타난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언덕은 어느새 차가 달리는 넓은 도로로 변한다. 신촌이 그간 얼마나 변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화와 신촌

전시실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왼쪽 벽 한 쪽에 담긴 이화의 역사가 눈에 띈다. 오른쪽에 놓인 1980년대, 1950년대에 각각 제작된 배지는 오늘날 본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지와 유사한 배꽃 모양의 테두리를 가지고 있다. 배지 안쪽에 그려진 본교 건물은 현재 사용되는 배지보다 조금 더 복잡한 모습이다. 왼쪽에는 본교의 본관 건물의 건축설계도가 전시돼 있다.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본관의 모습과 동일하다. 설계 당시, 본관 건물 전면 위편에는 십자가 조각을 하여 본교가 기독교 대학임을 상징했다고 한다.

위로 고개를 올리면 신촌을 중심으로 한 이화의 역사가 간략한 연표로 정리되어 있다. 이화를 빼놓고는 신촌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이화는 신촌역사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본교가 신촌으로 이전한 것은 1935년 3월, 본관과 음악관, 체육관을 신설하면서다. 신촌 이전 후, 본교는 대학 문화의 선두에 섰다. 연세대와 함께 연대해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 참여를 이끌어냈으며, 7~80년대 패션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했다. 실제로 당시 본교 주변에는 양장점, 양품점, 양화점, 양산집, 미장원, 구두수선집 등의 맞춤 패션 점포들이 밀집했다. 현재에도 몇몇 오래된 수선집이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본교 정문 앞 ‘영수선’이 있다. ‘영수선’은 1977년부터 41년째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본교 본관 건물의 건축설계도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본교 본관 건물의 건축설계도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문화 발상의 중심지

이화의 역사 섹션에서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신촌 거리 복원지도 ‘다시 보는 그때 그 거리’가 키보다 높은 벽면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신촌 로터리를 중심으로 연세대 앞길과 옆길에 자리했던 음식점, 다방, 나이트클럽을 보기 쉬운 평면으로 표현했다. 특히 신촌 굴다리를 지나면 자리하고 있는 독수리 다방은 아직도 신촌의 랜드마크처럼 같은 자리에 남아있다. 지도는 2016년 연세대 87학번 졸업생들의 기억을 토대로 만든 지도로 과거 학생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신촌은 어땠는지를 보여준다.

지도 맞은편에는 과거 신촌에 자리하던 다방과 카페의 성냥이 놓여있다. 수많은 종류의 성냥이 당시 다방과 카페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벽면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학생들은 다방에서 미팅을 하기도 하고, 시위 유인물을 준비하거나 독서 토론회 등을 열어 학생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최인호 작가의 유품과 육필원고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신촌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활동했으며 신촌 지역의 예술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최인호의 소설 『바보들의 행진』(1975)이 눈에 띈다. 최인호와 젊은 예술가들이 신촌을 중심으로 탄생시킨 『바보들의 행진』은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영화화되어 당대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외에도 여러 문학인의 작품집을 볼 수 있다.

최 작가의 전시를 지나 옆 섹션으로 넘어가니 9개의 LP판이 걸려있다. 해바라기, 김현식, 전인권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음악가들의 앨범이다. 1975년 ‘가요정화운동’에 따라 신촌에서는 이른바 ‘언더그라운드’라 불리는 대안 음악이 몇몇 음악다방(라이브 카페)에서 등장했고, 이는 신촌을 대안음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외에도 ‘패션의 메카’ 섹션도 있었다. 요즘 판매되는 기성복과 달리 직접 맞춰 입었던 맞춤 양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큰 카라와 튀는 색상이 지금의 유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연출한다. 또, 당시 신촌 미용실에서 사용하던 미용가위와 파마 도구들을 볼 수도 있다.

 

△사회변혁의 중심에 선 청년들

‘패션의 메카’ 섹션 뒤쪽으로 가벽 한 면을 꽉 채우는 커다란 인터뷰 영상과 함께 이한열 열사의 유품이 벽에 걸려있었다. 흙과 먼지로 얼룩진 하얀 바지와 연세대 티셔츠는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고 위험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앞에서 호헌철폐 및 구속 학생 석방요구 시위를 하다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이한열 열사 사건은 6월 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반대쪽 벽에는 신촌을 중심으로 펼쳐진 민주화운동 연표가 그려져 있다. 1960년 4·19혁명부터 1996년 제6차 범청학련통일대축전까지의 민주화운동 이야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연표는 신촌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주로 다루고 있었다. 1980년과 1986년 사건은 본교 관계자들이 주도적으로 나선 사건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전시과 김재경 학예연구사는 “전시에 연표 하나로 간단히 표현돼있지만 조사 과정에서 가장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라며 “신촌에서 민주화운동이 처음 시작돼 전국적으로 퍼진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시 한번 도약을 꿈꾸는 신촌

출구로 향하는 길에서는 지금의 신촌을 볼 수 있다. ‘다시 꿈꾸는 신촌’ 섹션 중간 기둥에는 ‘이화 스타트업 52번가’ 안내지도와 52번가에 위치한 작은 상점들에서 판매하는 물품들이 마치 백화점 쇼윈도의 모습처럼 놓여있었다.

이화 스타트업 52번가 지도 오른쪽에는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징기레이블’의 상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특징적인 캐릭터를 엽서와 신발, 핸드폰 케이스 등 여러 소품에 적용해 제작·판매한다. 그 왼쪽으로는 핸드메이드 가방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라곰’의 제품이 전시돼 있다. 작은 천을 이어 만든 파우치와 가죽 끈이 연결된 커다란 캔버스 백은 핸드메이드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이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쇠퇴했던 신촌 지역의 문화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 신촌의 재개를 위해 꾸준히 열정을 쏟고 있는 ‘서대문 예술마을 추진단’, ‘청년문화기획’의 활동들을 볼 수 있다. 서대문 예술마을 추진단은 청년예술가들의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서대문구에 새로운 도시문화를 형성하고, 지역 문화 자원 발굴을 통해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는 사업으로, 전시 개최등의 활동을 한다. 청년문화 기획은 창의적이고 대안적인 문화에 관심을 가진 청년문화기획자들이 신촌에 모여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활동을 말한다. 딴짓 박람회, 신촌 청년창업포럼 등이 그 예다.

이번 전시를 담당한 김 학예연구사는 “서울 시내에 많은 신촌(새로운 땅) 중 유일하게 그 의미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 서대문구 신촌”이라며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제2의 고향이 될 수도 있는 대학가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대한 기억과 흔적을 남기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김 학예연구사는 “중장년층이 젊었을 적 꿈꿨던 미래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되길 원한다”며 “신촌이 현세대와 그 윗세대 사이의 세대 차를 줄일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