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적으로 영어강의를 18학점 이상 들어야 졸업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학습 효율성이 저해되는 것은 물론, 영어강의가 개설되지 않는 전공 학생들은 전반적인 학사일정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영어 구사력 및 학습 지도 효율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의무적으로 영어강의를 개설해야 하니 당혹스럽기는 교원도 매한가지다. 이에 영어강의 필수 이수 제도를 고집하는 학교 당국을 비판하는 의견 역시 함께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영어강의는 학교 당국을 비판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언론사 대학평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실시하는 대학평가 항목에는 ‘국제화’ 항목이 존재한다. 크고 작은 비율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지만 국제화를 측정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가 영어강의다. 특히, 대외적으로 공신력 있는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2006년부터 ‘국제화’ 항목에 영어강의 비율 지표를 삽입하며 대학 전반에 영어강의 확대 열풍이 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일차적인 문제의 시발점은 ‘국제화’라는 모호하고 사회적 합의도 없는 개념을 대학 평가 기준에 삽입한 언론사다. ‘국제화’는 용어에 대한 통일된 해석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평가하기 어려운 모호한 개념이다. 이를 수치화해 평가하려 하니 무작정 영어강의수를 늘리는 학교에게 더 나은 평가를 내리고 순위를 올려주는 지금의 현상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정작 영어강의가 학생과 교원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국제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이 우세함에도 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언론사 대학평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위 매기기에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다. 본교가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영어강의 필수 이수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한다면, 대학평가 순위는 지속적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대외 이미지가 하락하고 학내 구성원의 반발은 커지며 비판은 또 다시 학교 당국으로 돌아갈 것이 자명하니, 학교 입장에서는 영어강의 필수 이수 제도를 폐지할 이유가 없다. 대학평가 순위에 목매는 사회 분위기와 그러한 분위기를 의식한 대학가 전반이 합심해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영어강의를 지속시키고 있는 꼴이다.

영어강의는 본교만이 발 벗고 나선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언론사, 사회 구성원, 대학가 전반이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지 않는 한 영어강의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언론사는 ‘국제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공론의 장을 열어 사회적 합의를 얻어내 대학평가 기준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대학가를 포함한 사회 전반은 애초에 대학평가 순위에 집착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해나가야 한다.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영어강의의 개선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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