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짝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몰래 쓴 연애편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전해지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로, 주인공인 ‘라라 진’으로 분한 배우가 동양계 여성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동양계 배우가 ‘라라 진’을 연기하기까지 작가 제니 한의 이유 있는 고집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일찍이 “동양계 여성 배우에게 주인공 자리를 주는 제작사와 함께 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양한 제작사로부터 소설의 영화화 제의를 받았지만, 단 몇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라라 진’ 역할에 백인 배우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이후 지금까지 할리우드는 아시안계의 화이트 워싱(white-washing) 논란으로 뜨거웠다. 화이트 워싱이란 역할의 배경과 인종은 무시한 채 무조건 백인이 해당 역할로 분하는 것을 말하는데, 영화 ‘마션’(2015) 제작진이 한국계 과학자 ‘민디 박’ 역할을 백인 배우가 분하게 해 비판 받은 사건을 기점으로 이와 관련된 논란이 확산됐다.

화이트 워싱 논란의 골자는 사실상 사회 전반적으로 인종·성별·문화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미디어 산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드라마, 영화 등 방송 영상 콘텐츠가 시청자에게 끼치는 유의미한 영향에 대한 담론은 진부한 주제라고 느껴질만큼 익숙하지만, 미디어는 사회 현상을 따라갈 뿐 대개 이를 앞서지 않는다. 가령 인종문제의 경우, 미국 내 거주 중인 소수 인종이 방송 영상 콘텐츠에서 주인공을 맡는 경우는 그들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에 한참을 밑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모든 출연진이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 구성된 영화 ‘서치’(2018)의 북미 흥행은 한국인으로서 고마운 성과다. 영화 ‘서치’의 주인공으로 분한 배우 존 조가 영화 ‘마션’의 화이트 워싱 논란 당시 누리꾼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행동한 해시태그 운동 ‘존 조를 출연시켜라(#StarringJohnCho)’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존 조는 이번 영화의 흥행으로 소수 인종을 배제해야 ‘잘 팔린다는’ 자본주의 논리를 종식시켰다. 소수자를 배제하는 것이 명백한 억지 논리임을 증명하게 된 것이다.

미디어는 우리 삶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더욱 좋은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방송 영상 콘텐츠를 제작함에 있어 다양성을 추구함은 일종의 ‘책임 이행’이다. 또한,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와 ‘서치’는 북미의 미디어 종사자들이 대중에게 전하는 ‘인종 다양성 요구’에 대한 화답으로 볼 수 있겠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서비스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경우, 최고 콘텐츠 책임자인 테드 사란도스가 “할리우드의 캐스팅이 아닌 현실적인 다양성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성소수자, 유색인종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대중문화에 녹이려는 움직임이 스크린과 모니터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으며, 나타나야만 한다는 뜻이다.

국내 방송 영상 콘텐츠 업계는 어떠할까. 국내 드라마 예능 영화 등에서 사회적 소수자가 서왔던 자리는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 소수자를 향한 시선이 다양해지는 이 시점에서 정작 미디어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지우고(wash) 있지 않는지 되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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