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백악관 내부의 한 고위공직자가 기고한 뉴욕타임즈의 컬럼으로 미국 정치권이 발칵 뒤집혀 있다. 컬럼에서 비판의 당사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기고자를 색출하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한편, 해당 컬럼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받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은 자신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백악관이 미국은 물론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정책을 결정하는 곳임을 생각할 때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와 같은 현상은 그 양상과 실제 모습은 다르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통치자는 선거캠페인에서 다양한 약속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며 유권자들은 이를 믿고 정당과 후보를 선택한다. 캠페인과정에서 만들어진 후보와 유권자 간 신뢰관계는 선거 직후 정책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높은 국정운영지지율로 나타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대감은 실망과 좌절, 때로는 분노로 이어져 정책결정자들은 물론 정치 전반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초래한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선거기간 동안 활발히 이루어진 소통의 과정이 선거가 끝난 후에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였다는 점에 기인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원래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사용되고 있지만 한국정치를 특징적으로 표현하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용어는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이 비대화하여 권력이 집중된 나머지 독선과 불통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일컫는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정부에서 발견되어 온 양상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우선 공동체 내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상호 존중되는 과정의 중요성이다.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현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공유는, 의사결정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사전에 검토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결정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고 존중받을 때 집단 사고에 갇히지 않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의 중요성이다. 참여가 중요해진 현대의 사회에서 소통의 리더십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적인 의사결정의 틀이 아닌 리더에 의존한 공동체 운영은 불안정하고 불확실성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공동체를 위한 정책의 입안과 실행, 평가에 이은 환류에 이르기까지 의사결정과정의 전반이 제도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될 경우에만이 안정적인 공동체 운영이 비로소 가능해지며 정책결정의 책임소재 역시 분명해진다. 개인이 아니라 제도를 통한 집단 책임기제의 마련이 중요한 이유이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액튼(Acton) 경은 일찍이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그러하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견제 없는 권력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위험을 경고하는 말이다. ‘촛불민주주의’에서 확인되었듯이 지금의 민주주의는 정당이 주축이 되는 대의제민주주의의 틀을 넘어 사회의 구성원들이 다양한 참여민주주의의 통로들을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직접민주주의적인 요소가 강화되고 있다. 참여 없는 민주주의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의사결정과정의 개방성 강화, 여기에 모든 민주주의 공동체의 성패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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