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시선 의식 않고
본인을 더 사랑하게 돼

  탈코하고 다닌지 n개월.

  개강 첫날에도, 약속이 있어도, 내 몸을 위한 선크림과 립밤만 간단히 바르고 옷은 내 몸이 편하게 입고 다녔다. 누군가가 이십 대 초반인 애가 왜 안 꾸미고 다니냐고 했지만 이제 그런 말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능력이 생겼다. 원래부터 화장과 불편한 옷을 너무 싫어했던 내게는 사실 탈코가 어려운 게 아니었다. 왜 안 꾸미고 다니냐고 말하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다. 왜 당신은 안 꾸미면서 나는 꾸며야 하나요?

  내가 짧은 치마와 ‘불편하지만 예쁜’ 옷을 입었을 때 그것이 나의 선택인지 아닌지, 주체적인 선택이 맞는지 참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결국 내 선택도 이미 수많은 사회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예쁜 옷을 입고 싶어서 입는다” 이것이 과연 사회적 시선이랑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나의 주체적인 선택일까? 답은 아니다. 꾸미는 게 자기만족이라고도 하지만 우리는 그 자기만족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생각도 해봐야 한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 만약 그런 것이 정말 없다면 나갈 때마다 예쁘게 보이지만 내 몸에 불편한 옷을 입고 싶어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까지 내가 바뀌어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이 생긴다. 내가 ‘예쁘게’ 입으면 ‘시선 강간’ 을 당하는 우리나라에서, 나를 평가하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을 수없이 겪은 내 일상에서, 나는 어떻게 힘을 낼 수 있는가. 매 순간 고민해도 어렵다.

  한편 그래도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내 멋대로 살 수만은 없다. 예의를 지켜야 할 곳에서는 단정하게 차려입기도 해야 한다. 옷은 그렇게 그때와 장소에 맞게 입으면 되겠지. 그 정도가 어렵다.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코르셋을 ‘전시’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도 몰랐을 수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몇 달 전부터 나의 개인 SNS에 화장을 심하게 한 사진이나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사진은 전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리는 사진도 보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작은 부분이지만 남 시선을 훨씬 신경쓰지 않게 됐고 내가 나를 인정함으로써 날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반면 가끔씩 SNS에 조신한 자세를 취하게끔 만드는 불편한 오프숄더에 보일락 말락 딱 붙는 치마를 입고 클럽에가서 몸매를 부각시켜 자신의 ‘인생샷’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도 안 멋있고 안타깝다. “예쁜 게 권력이냐? 예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게 권력이지” 어디선가 듣고 띵했던 말이다.

  나는 각자 생각도 다르고 변화속도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의 요지는, 본인 맘대로 살되, 적어도 ‘전시’하지 말자는 것이다. SNS에 전시하는 순간 그건 개인적인 게 아니라 작든 크든 사회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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