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대 ‘변태적 미감’ 展,
4일~8일 개최

조형예술대학(조예대)은 기획전시 '변태적 미감' 展을 4일~8일 조형예술관(조형관) A동 2층 이화아트센터에서 진행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작년부터 조예대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부 재학생들이 꾸려온 조예대의 두 번째 기획전이다.


조예대 학생회 조예나민C는 다양함을 토대로 해 여성에게 주어지는 모든 기준과 평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과 페미니즘에 대한 미술적 해석 및 표현들을 공유하길 원한다고 전했다.

 

김은채, ‘틈새, 또렷한 소리’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김은채, ‘틈새, 또렷한 소리’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글이 적힌 종이가 어지럽게 벽을 타고 바닥까지 늘어져 있다. 종이에는 여성 혐오적 표현들이 담겨있다. 일부는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몇몇은 분쇄기에 갈린 채 쌓여있어 쓰레기 더미를 연상시킨다. 바닥에는 미처 갈리다 만 종이와 분쇄기가 놓여있다. 종이 더미에서 시선을 떼면 종이들 사이로 언뜻 정신없이 움직이는 영상이 보인다. 화면에는 서 있는 모니터와 눕혀진 모니터에서 동시에 나오는 다양한 크기의 글씨가 가로, 세로로 계속하여 움직인다. 글은 여성 혐오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일상 속에서 ‘정상’이라는 단어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정상이니 뭐니 하는 수많은 말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다보니 자연스러운 단어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정말로 이 단어는 그대로 수용돼도 될 단어인가?”


큰 규모와 작품 속 글들이 주는 궁금증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김은채(영상·15)씨의 ‘틈새, 또렷한 소리’다. 김씨의 작품은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작품을 들여다볼수록 겉에 둘린 혐오 표현보다 그 속에 가려진 혐오 대상에게 집중하게 된다. 혐오와 배제들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 받는 이들은 혐오하고 배제할수록 가려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또렷이 보인다.


김씨는 “겨우 들여다봐야 알 수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소위 ‘여성 상위 시대’라 불리는 현 사회에서 여성과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는 줄어들지 않고 되레 다양한 방식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여성과 성 소수자는 누군가의 혐오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분명히 존재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과 존재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임성희씨, 'colorless'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임성희, 'colorless'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김씨의 작품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흑백의 추상적인 작품이 시선을 끈다. 임성희(서양·16)씨의 ‘colorless’는 흰색, 검은색, 회색의 무채색으로 이뤄졌다. 임씨는 “평소 설화에 관심이 있었는데 설화는 특정 집단의 생각이 반영돼 구전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러한 생각 때문인지 제목으로 사용된 ‘colorless’라는 단어에는 가치나 욕망 등의 색이 입혀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가로로 눕혀진 캔버스 안에는 산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듯한 모습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캔버스를 벗어나기도 전에 굵고 검은 선 안에 갇히고 만다. 임씨는 이미지를 둘러싼 사각형태의 검은 선은 특정한 관점 속에 대상을 가두는 듯하지만, 색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그 관점이 존재하지 않음을 중의적으로 나타낸다고 말한다. 그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등의 특정한 가치나 이를 통해 전해지는 여러 담론에 의해 여성은 기록되고 그려진다며 한 개인으로서 여성의 삶이 타자에 의해 구성되면 안 된다고 전했다.

박소희, ‘Contradicted Gensis’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박소희, ‘Contradicted Genesis’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뒤를 돌자마자 붉은색 실이 뒤엉켜있는 박소희(패션·16)씨의 ‘Contradicted Genesis’가 눈에 들어온다. 붉은 실들이 서로 엉켜 향로를 휘감고 있다. 그 뒤의 벽에는 영상이 비춰지고 옆으로 얇은 책자가 놓여있다. 영상은 추상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 박씨 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상 속에서 그는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한다. 그는 어떠한 노력도 변화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밧줄에 목을 맨다. 영상 앞 피워진 향은 이를 추모하는 듯하다. 뒤에 놓인 책자 속에는 성경 구절이 쓰여 있다.


박씨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래로 깊게 뿌리박힌 여성의 이미지는 누구도 쉽게 탈피할 수 없는 하나의 ‘속박’이라고 전한다. 그는 영상 속 밧줄에 목을 매는 장면은 죽음을 암시하는데, 이는 비관적이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투쟁의 의지를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박씨는 “교회에서 얼마 전 들은 설교 내용 중 아브라함이 신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자 아들과 여러 부인을 얻었다는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설교 후 역시 아들을 여럿 낳는 축복은 신이 주는 것이라는 주변의 발언이 나를 불편하게 했고, 그 감정을 작품에 녹여내고 싶었다”고 전했다.

 

강소현, ‘the funeral of ‘zzi zzi’’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강소현, ‘the funeral of ‘zzi zzi’’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출구를 향해 걷다 보면, 강소현(동양·14)씨의 ‘The funeral of zzi zzi’를 만날 수 있다. 강씨는 제목 속 가슴을 ‘찌찌’가 아닌 ‘zzi zzi’로 표기해 단순히 가슴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고유하고 독립된 존재로 느껴지게 했다. 작품 한가운데에는 가슴의 영정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사진을 감싼다. 작품의 전반적인 색감은 장례식이라는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색채로 이뤄져 있다. 사회의 억압으로 답답한 브래지어 속에 갇혀있던 자신의 가슴에 장례식을 치러준 것이다. 장례식의 통상적인 슬픔의 이미지를 밝고 경쾌한 색과 형태의 사용을 통해 축제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강씨는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나면서 사회가 정한 여성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여성에게 오는 공격이 증가함을 느꼈다”며 “그러한 공격에 대한 긴장감이 여성의 사고와 신체를 굳게 하고 그들을 고립시킨다고 생각해 그 긴장감을 풀어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이 여성들에게 억압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잊지 말자고 전함과 동시에 “작품은 그에 그려진 영정 사진 속 가슴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허상된 코르셋과 영원히 이별하고 자유를 찾았음에 기뻐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소영, ‘몸짓’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원소영, ‘몸짓’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이지원, ‘“”수많은 말 말 말’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이지원, ‘“”수많은 말 말 말’ 최도연 기자 contagious-grin@ewhain.net

이외에도 춤을 추는 무희의 몸 자체보다 그의 몸짓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집중하고자 하는 원소영(서양·16)씨의 ‘몸짓’, 사회가 여성에게 씌운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지원(시각·15)씨의 ‘ “ ” 수많은 말 말 말’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전시를 감상한 김성정(디자인·17)씨는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모인 전시라 큰 주제는 동일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를 보여주는 방식이 다양해 흥미로웠다”며 “여대라는 공동체의 특수성이 아니면 기획되기 힘들었을 전시라고 생각해서 더욱 특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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