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여러분, 그리고 학부모님과 내외 귀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김혜숙입니다.

 

오늘 우리 이화는 그간의 배움을 통해 소중한 결실을 맺는 928명의 학사, 819명의 석사, 그리고 126명의 박사의 영예로운 졸업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든 이화 교정을 뒤로하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졸업생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바쁘신 가운데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학교법인 이화학당 장명수 이사장님, 김영주 총동창회장님, 그리고 자녀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참석해주신 학부모님들과 모든 내외 귀빈 여러분, 이화 교직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올해 여름은 유독 뜨겁고 힘겨웠습니다. 111년 만에 찾아온 사상 초유의 기나긴 폭염이 한풀 꺾이기만을 기다리는 힘겨운 나날들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있던 여러분들이야말로 여느 때보다 바쁘고 열정적으로 여름을 보냈을 것 같습니다. 뜨거운 폭염을 견디고 나서야 탐스러운 열매로 결실을 맺는 것처럼 준비의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 여러분의 졸업식이 더욱 빛날 수 있었습니다. 학위 수여와 함께 인생의 한 단락을 마무리하는 여러분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이화라는 따뜻하고 정겨운 울타리를 벗어나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교문을 나설 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의 주인공으로 서게 도와주신 부모님, 친지 여러분, 그리고 교수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그동안 여러분들이 보낸 이화에서의 시간은 어떠셨나요? 이화에 첫 발을 내디딘 입학식과 오리엔테이션, 열람실에서 밤새 공부를 하던 날, 조별과제와 시험으로 힘들어하던 순간들, 그리고 끝나고 나서의 후련함, 세상을 누비며 견문을 쌓던 많은 날들... 이화는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여러분들의 기대에 못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동문들이 졸업 후 모두 공감하는 부분은 한해 한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는 학교라는 점입니다. 아마 나이가 들어 내 나이에 이르면 이화의 의미와 가치를 또 다른 차원에서 느끼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난번 졸업식을 마치고 우연히 이층을 쳐다본 나의 눈에 한 학생이 서성이면서 마지막 대강당에서의 순간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순간을 음미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왠지 나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학생 시절 반대했던 채플마저도 이제 그리운 이화의 소중한 추억으로 여러분에게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애써 지키려 했던 이화의 가치와 삶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고 이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낄 때 자신의 가치가 높아졌다고 느낍니다. 4년 전의 여러분과 지금의 여러분을 한번 비교해보십시오. 아마도 여러분은 많은 변화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취업 관련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 한 말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면접 시 이화여대생들은 많은 경우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가를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하려는지를 말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는 것이 그분 말씀의 요지였습니다. 이화에서의 인문교육과 채플, 여성의식의 고취는 이화인을 빛나게 하는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화에서 자유, 자율, 인내, 용기, 헌신, 배려, 열정.... 이런 단어들이 여러분의 삶 안에 깊이 각인되어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저는 앞서서 졸업을 한 선배로서 몇 가지 당부를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위대한 영국인 윈스턴 처칠은 “성공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실패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하고자 하는 용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겪는 좌절과 시련들, 고통조차도 크게 보면 삶의 일부입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괴로움이나 실패조차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성취와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이 시련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든 실패이든 그 안에 갇히는 삶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가 아닙니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진정한 자아와 나의 삶이 무엇인지를 어렵더라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삶은 실패도 성공도 아닙니다. 어느 누구와도 구분되는 귀중한 생명으로서의 ‘나의 나됨’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 스스로가 만족하는 모습을 갖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자기의 삶과 시간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과정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모습이건 현재의 자기를 사랑하는 이화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이 불만족스럽다면 또 내일이 있을 수 있고, 한 길이 막히면 뒤돌아 나와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때때로 잊어버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동일한 시간을 경험하고 있지만 모두 상황이 다르기에 그 경험의 질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도 없고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도 없습니다.

 

둘째, 이화는 언제나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이화의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이화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화는 여러분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기쁨과 슬픔, 만족과 불만족, 성취감과 패배감 등 모든 감정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졸업한다고 해서 이 공간과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많은 선배들이 일평생에 걸쳐 이화로 다시 돌아오고, 다시 이화를 찾곤 합니다. 이화는 일반 남녀공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 연대를 느낄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여성 지성 공동체로서 자유의 공기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화 안에서 그 자유를 느끼고 그동안 이화를 거쳐간 수많은 선배들, 그리고 여러분의 뒤를 따를 많은 후배들과도 조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자유로움의 힘이 필요할 때, 그리고 여러분이 지치고 힘들 때,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언제든 이화에 찾아와 젊은 시절 자신이 가졌던 꿈과 열정을, 그리고 어설픈 젊음의 어리석음과 무모함도 돌아보고, 잠시 쉬면서 자신을 재정비하고 충만하게 하는 공간으로 삼기 바랍니다. 학교와 동창회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삶과 학업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후배들과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재능과 성취조차도 후배들을 위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녀에서 젊은 여성으로,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하는 여성으로, 그리고 나이든 여성으로... 여성으로의 삶에서 겪는 변화가 많을 것입니다. 여성 정체성의 다양한 변화와 준비되지 않은 삶의 여러 국면들을 낯설게 여기지 말고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이화, 하나의 여성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언제든 이화의 문은 열려있습니다. 그리고 양팔 벌려 여러분을 맞을 것입니다.

 

셋째,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온 이화와 이화인의 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화는 한국 사회와 민족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130여 년 전 한 명의 여학생으로 시작한 이화는 한국 여성 교육과 동일시되는 단어였으며, 이화의 발전은 곧 한국 여성 교육의 발전이었습니다. 한국의 근대화를 여성 고등교육의 발전과 떼어 생각할 수 없으며 그런 한 이화와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냉혹한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과 한국전쟁, 그리고 짧지만 빛나는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역사,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페이지마다 이화는 한국의 역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10대의 나이로 옥고를 겪다 순국한 유관순 열사가 우리의 선배요, 새로운 근대한국사회 건설에 앞장 섰던 수많은 신여성들이 우리의 선배였으며, 한국전쟁 당시 부산까지 떠밀리며 피란을 가서도 학업과 연구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대학생들도 우리의 선배였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캠퍼스에서 공단에서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했던 선배들, 시민운동과 현실 정치 안에서 활동한 수많은 선배들이 있었으며,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배출된 여성 최초, 1호들 또한 여러분의 선배들이었습니다. 성취와 성공을 이룩한 이화인도 많지만 현실의 벽과 사회의 편견 속에서 스러져간 이화인도 많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교를 하는 이화인, 낮은 곳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이화인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이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변화하였고 이는 우리 사회의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역경을 마다하지 않는 이화인의 유전자, DNA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과 삶을 사랑하는 이화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타자와 공감하고 타자를 배려할 줄 아는 태도는 인간에 대한 사랑, 유한한 인간 삶에 대한 경외와 연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세계가 아무리 급박하게 변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가진 고유한 영혼이 있듯이 고유한 재능과 의지가 있기에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크고 작은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회를 찾고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밀도와 질은 여러분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시간의 길목에서도 여러분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하나의 여성으로서 진정 자유롭고 온전한 생명으로 빛났던 이화에서의 시간을 항상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이화 안에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거나 다하려고 노력해온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격려하기를 바랍니다. 이화는 항상 큰 산처럼 여러분의 삶을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졸업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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