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이야기를 한 땀 한 땀에 녹여... ’선녀 옷’을 짓다
마음 속 이야기를 한 땀 한 땀에 녹여... ’선녀 옷’을 짓다
  • 유현빈 기자
  • 승인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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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장인 이나경 동문을 만나다
이나경 장인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이나경 장인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매년 5월31일 진행되는 총동창회 행사에서는 ‘올해의 이화인’으로 선정돼 각 학과를 대표하는 동문들이 고운 한복을 입고 참석해 자리를 빛낸다. 동문들 사이에서 ‘선녀 옷’으로 통하는 한복을 입은 약 50명의 동문은 행사장 정중앙에 앉아 이목을 사로잡는다. 행사에 활용되는 모든 한복을 4년 전부터 담당하고 있는 이나경(서양화·77년졸) 장인을 23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창립 132주년 기념식에 참여한 '올해의 이화인'들이 이 장인의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창립 132주년 기념식에 참여한 '올해의 이화인'들이 이 장인의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그의 작업실엔 한 방 가득 고운 한복들과 원단들이 색상별로 정리돼있다. 켜켜이 쌓인 원단과 한복들은 모두 이 장인이 손수 직접 원단을 짜 치자 등의 천연 재료들로 염색한 것이다. 그는 원단을 직접 준비해 다듬이질과 손질을 거쳐 옷을 짓는다. 가게에서 완성된 원단을 사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과정을 꼼꼼히 손수 작업하는 것이다. 

 

이 장인이 직접 쪽물을 들여 색이 짙은 정도가 다 다른 원단들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이 장인이 직접 쪽물을 들여 색이 짙은 정도가 다 다른 원단들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이 장인은 한복의 작업과정에 대해 “한복 한 벌을 공들여 짓기 위해 많게는 3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 과정이라도 건너뛰면 내가 원하는 옷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상상으로 그린 옷 한 벌을 만나기 위해선 색상이나 재질 등 모든 요소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움 정도는 감수한다”고 설명했다. 

  13살에 사고로 팔 하나를 잃은 이 장인은 성한 몸으로도 해내기 어려운 고강도의 작업을 외손으로 해낸다. 그는 모든 단계에서 최고의 퀄리티를 추구하는 일을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일에 비유했다. 의사의 작은 실수가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듯, 옷을 만드는 전 과정을 단 하나의 실수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한다는 것이다. 

 

매년 ’올해의 이화인’으로 선정된 동문들이 입는 한복 겉치마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매년 ’올해의 이화인’으로 선정된 동문들이 입는 한복 겉치마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최고의 조형미를 담은 옷’. 이 장인이 자신의 한복을 수식한 단어다. 한복 한 벌을 지어도 형태를 이루는 모든 점·선·면과 색감 등 전체적인 조형에 신경 써 옷을 짓고, 그 속에 그의 감성을 담는다. 모든 요소들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되 깃이나 동정, 도련선 등의 모든 디테일이 살아있도록 옷을 만드는 것이다. 

  이 장인은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의식주(衣食住) 중에서도 제일 처음 등장하는 요소가 입을 것(衣)인 만큼 옷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라며 “사람은 처음 태어나 배냇저고리를 입고, 죽고 나서는 수의를 입는데, 이를 포함해 한 사람이 일생동안 걸치는 모든 옷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복을 지을 때는 마음에 항상 담아뒀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타인에게 전달된다”며 “직접적인 메시지가 될 때도 있고, 세월 속에서 마음속에 응축된 이야기들일 때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음 속 응축된 메시지가 녹아든 옷을 짓는 이 장인의 한복 인생에는 여러 시련들이 있었다. 그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매사에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내가 겪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운을 떼며 “사람의 삶은 매순간 힘든 것이기에 힘든 과정을 굳이 없애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그 시간 덕에 내가 오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시간을 견딘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많은 일들을 거치며 살아갈 젊은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도 있을 수 없으며, 밤잠 안자고 죽어라 노력했을 때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