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는 자신의 영향력 자각하고 올바른 방향성 가져야

  50년대 미국 사회에 매카시즘 광풍이 불었을 때였다. 당시 미국 정부에서는 소위 ‘빨갱이’로 의심되는 일부 작가들과 배우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아카데미 시상 본부에 송부했다. 결국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와 배우의 이름은 해당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불리지 않았다. 대신 낯선 이름들이 시상식에 울려 퍼졌고, 그 누구도 단상 위에 올라가 상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회자는 진행을 이어갔고, 무대 밑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짜기라도 한 듯 침묵했을 뿐이다.  

  당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와 배우들은 모두 해당 회차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다만, 아카데미 시상 본부에서 가명을 사용해 미국 정부에 정면으로 대응했을 뿐이었다. 할리우드는 당시 매카시즘에 정면으로 대응한 사실상 최초의 집단이었고, ‘빨갱이 사냥’에 여념 없던 미국 사회에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연예계의 진보성은 ‘넷플릭스(Netflix)’와 같은 독자적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속속 탄생하며 더욱 빛을 발했다. 넷플릭스 자체 제작 드라마 중 대중적으로 성공한 ‘루머의 루머의 루머’(2017)는 기존 콘텐츠들이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청소년 자살이라는 주제를 양지로 끌어왔다. 올해 초 발표된 ‘굿 키즈 온 더 블락’(2018)은 주인공 전원을 히스패닉과 흑인으로 캐스팅해 여전히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 인종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도 했다. 

  가요계 역시 근 몇 년 간 발전을 거듭했다. 미국 사회에서조차 지탄받던 페미니즘은 일종의 유행이 되어 헤일리 스타인펠드부터 카디 비 등 신예의 탄생을 알렸고, 여성혐오의 결정체였던 힙합씬에도 켄드릭 라마를 필두로 여성비하 없이도 힙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낸 래퍼들이 등장했다. 성공 가두를 달리던 가수 시아는 뮤직비디오에 소아 성애를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가 공식 사과를 해야만 했고 레코드사가 그녀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의 연예계가 완벽하다기보다는 대체로 대중의 수준을 앞서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대중이 ‘빨갱이 사냥’에 여념이 없던 시절에는 매카시즘의 허구성을 알렸고, 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을 불러일으킨 것도 미디어의 영향이 컸으며, 인종 차별과 성차별이 만연한 이 시대에는 대중보다 앞서 인종·성평등을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연예계를 살펴볼 차례가 됐다. 최근 ‘나의 아저씨’(2018)가 성황리에 종영했다. 드라마는 주인공 21세 여성을 끝없이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시키며 여성에게 40대 남성만을 선택지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이라 명명한다. 채널을 돌리면 성인 여성들이 교복, 유치원복을 입고 섹스어필을 하며, 예능에서는 장난처럼 ‘꽃뱀’이라는 단어가 오간다.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목소리 낼 생각도 못하면서 소아성애와 여성비하를 옹호하는 데에만 표현의 자유라며 열을 올리기도 한다.

  미디어가 극도로 발전한 지금의 상황에서 연예계는 그 무엇보다 영향력이 높은 집단이다. 늘 정치권, 언론계 뒤에 숨어왔지만 오히려 대중에게는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바람직한 현상인지는 모르겠다만, 연예계는 대중이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향성은 정의로워야 한다. 적어도 지금처럼 사회적 흐름과 반하는 방향으로, 대중보다도 한참 뒤처지는 수준으로 가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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