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창조
계속되는 창조
  • 장윤재 기독교학과 교수
  • 승인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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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신하에 이화는 언제든 도전할 수 있어

  가끔 팔복동산에 올라 기도하곤 한다. 중앙도서관 뒤쪽, 기숙사로 오르는 가파른 길 한 켠, 숲으로 둘러 싸여 있어 산새들의 지저귐이 아름다운 이곳은 마음이 힘들 때 기도하기 딱 좋은 곳이다. 그럴 때면 최일환님의 기도 시 ‘아침 산길’이 생각난다.

  “이른 아침 숲 우거진 뒷동산에 올라가다가 바위에 앉는다. 약수보다 시원한 아침 공기 공짜로 마시는 그 은혜여. 한눈으로 들어온 시가지는 손에 든 신문 기사처럼 또 시끄러워진다만 아침 이슬 구르듯 산새들의 노래 맘 놓고 듣는 감사함이여. 별들이 밤새 속삭이다가 떠난 자리 바위틈에 풀꽃들이 숨은 듯 피고 풀꽃처럼 이름 없이 나 또한 외로워도 아 - 온 세상 내 것 같은 풍요함이여. 나를 잘 알아주시는 그분 지금 나를 지켜주심이여. 이래서 오늘 하루도  즐거울 수 있는 나의 마음속 믿음의 꽃. 아침이면 뒷동산에서 새롭게 새롭게 피어난다.” 시인은 지금 만물을 지으시고 날마다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 

  성서의 하나님은 창조자다. 사람들은 성서의 창조를 과거에 일어난 단 한 번의 행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서에는 세 가지의 창조가 나온다. ‘태초의 창조’와 ‘계속되는 창조’ 그리고 ‘새 창조’다. 태초의 창조로 시간이 시작된다. 하지만 신의 창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개된다. 빅뱅의 우주는 계속 펼쳐지고 있으며 이 점에서 모든 날은 여전히 창조의 첫 새벽이다. 그리고 그 창조는 미래에 완성될 것이다. 세계가 하나님 안에서 미래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성서의 창조신앙이다.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은 바울이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가 지금도 진행 중인 역동적인 과정임을 알았다. 그러기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에베소서 4:22-24) 여기서 그가 말하는 ‘새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인간이다. 

  인간의 교만 가운데 가장 큰 교만은 무엇일까? ‘내가 최고다’라는 교만보다 더 큰 교만은 무엇일까? ‘나는 새로워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나는 이대로 완벽하다’는 자기 착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 앞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불신앙은 무엇일까? ‘나는 새로워지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일 것이다. ‘나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태초에 무(無)에서 세상을 창조하고, 혼돈에서 질서를 불러내며, 오늘도 이 세상에 새 생명을 부여하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성서의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불신앙이다.

  이화는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여성의 인간화’를 건학이념으로 삼고 있다. 그 기독교 정신의 뿌리가 바로 성서의 창조신앙이다. 창조는 과거에 단 한 번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고 역동적인 힘이다. 우리 자신이 썩은 호수처럼 병들었는가? 우리 이화가 새롭게 되는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도 사랑으로 만물을 새롭게 변혁하는 그 분 안에서 언제나 새로 시작해 볼 일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린도후서 5:17)